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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랑 Nov 15. 2024

이토록 친밀한 사춘기

행복 전당포는 폐업합니다.

밀린 일이 더 밀리지 않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 키보드에서 춤추듯 유려한 문장이 저절로 생성될 리 없는 나는 오늘도 더디다. 혹시나 결연한 마음 다짐이 더딘 속도에 부스터가 되어줄까 싶어 핸드폰 전원 차단을 결심한다. 전원 차단을 위해 핸드폰 화면으로 움직이는 손가락보다, 학교에 있을 딸내미가 점심시간 동안 보낸 확인되지 않은 문자로 향하는 눈길이 재빠르다. 오늘도 전원 차단에서 확인으로의 방향 전환이 이겼다.


‘엄마, 나 친구가 다니는 기타 학원 다녀보고 싶어.’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었으나 ‘참을 인’ 한 번 마음에 새기고 시간이 있겠냐는 답문자를 보냈다. 감정이 삭제된 문자는 갱년기 엄마의 활활 타오를 화를 차단해 주는 방화복이다. 생각의 여유는 덤.


‘시간은 가능한 게 아니라 내면 돼. 태권도를 못 다니긴 하겠지만 예고 입시를 결심하고 화실을 다니는 요즘, 취미로 받아들일 수 없는 미술을 대신할 취미를 태권도에 비해서 부상 위험이나 대회 출전 부담감 없이 가볍게 기분 전환 하는 느낌으로 기타를 배워보고 싶어.’

틀린 말은 없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없다. 한가하게 취미를 원하는 예고 입시 준비생에게 어떤 말로 설득을 해야 하나 고민이 깊다. 진즉에 매운 학원맛을 미리 봐줬어야 했다. 후회가 막급이다.

'지금 아니어도 되니까 한 번 생각해 줘. 내가 이런 걸로 장문의 글을 쓸 줄은 몰랐네 ㅋㅋ.. 나 이제 수업'

문자 말미에 '나 이제 수업'이라는 문장에 고맙다는 인사가 절로 나온다. 곧 수업 시작이니 핸드폰으로 대화는 강제 일시정지, 다시 한번 생각의 여유가 생긴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즈음에 맞춰, 구석기 노트북에 대여한 책까지 더해져 무거워진 가방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돌고 돌아갔다.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은 누구보다 잘 그리길,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빛나는 별처럼 무엇보다 반짝이길, 남들과는 다른 한 끗이 있길 바란다. 자신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노력하기도 원한다. 여기에 공부는 당연히 본인이 목표로 정한 학교에 무난히 입학할 수 있을 만큼 잘하기까지 소망한다. 원하고 바라고 소망하는 것 투성이다. 이 많은 것을 왜 원하고 바라는 걸까? 당연히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다. 그 아이의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의 행복을 저당 잡는 나는 행복 전당포 업주인가? 그런가?저당 잡힌 지금 아이의 행복을 복리 이자까지 두둑이 챙겨 줄 자신은 있나? 그럴 리 없다. 오히려 신용 불량자에 가깝다. 오지 않은 미래를 점치는 건 불가능하다. 용한 점쟁이 소개받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쯤이 되면 거의 막바지다. 그런 건 없다는 거, 그걸 아는 만큼 정도로는 현명해졌다.


자기 주도적 학습 인재를 지향하는 방임형 육아를 하는 나. 이게 요즘의 나이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번번이 부딪히고 깨지고 지치고 그래서 힘 빠진 나는 나와는 다른 내 아이를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육아하기가 목표이다. 아이에 대한 사랑을 믿음으로 풀어지지 않게 꽁꽁 뭉친다. 흘러넘치는 정보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내 장기가 발휘되어 아이를 위한다는 돛을 달고, 내 아이에게 상처 주는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를 나에게 상처가 생기기도 전에 항생처를 처방하는 꼴이라고 탓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아이가 행복하게, 언젠가 찾아올, 내가 없을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한 최소한이 딱 저만큼이라고 생각하지만 생각 하나 더하기 해본다. 지금 행복하면서 딱 저만큼의 기본이 가능한가? 가능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불가능에 더 가까울 지도 모른다는 긍정적인 표현이겠지.


이번에도 찬바람 불면 호호 불어 먹는 붕어빵처럼 달콤하게 아이에게 져줄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행복을 채워낼 줄 아는 아이가 미래 행복 또한 책임질 수 있을 테니. 행복을 채워보겠다는 너를 말릴 수가 있을까?

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같을 수 없으니,

너의 시간을 나의 시간에 맞춰 채근하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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