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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지원 Sep 11. 2024

결혼정보회사를 가다

사실 한번도 결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벌써 올해 만으로 서른 셋이 되었지만, 아직 커리어가 안정되지 않아서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결혼정보회사를 내 발로 들어갈거라고는 나조차도 짐작하지 못했다. 오랫만에 나보다 5살 많은 친한 언니를 만났는데, 30대 후반이 된 언니는 결혼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이제 아기를 가지고 싶어서라도 연애를 해야하는 나이. 언니의 근심어린 표정이 마치 멀지 않은 미래의 나의 모습을 미리보기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다음날 처음으로 듀오를 검색해 전화를 걸었다. 그래, 상담이라도 받아보자!


내가 예약한 곳은 총 3군데. 결정사는 두 종류가 있는데, 듀오, 가연 같은 일반사와 더 비싸지만 조건이 좋은 상대를 만날 수 있는 '노블사'가 있다. 일반사 한 곳과 노블사 두 곳에 다녀왔다. 디즈니 영화 <뮬란>에서 뮬란이 선 보러 가기 위해 어울리지도 않는 꽃단장을 하던 장면처럼, 최대한 예쁘게 꾸미고서.


첫번째로 간 일반사는 소개팅 10회에 150만원. 타 일반사는 300만원 대인데 새로 생긴 곳이라고 해서 저렴했다. 상담 전 카톡으로 신상에 대한 설문지를 작성하고 갔다. 전 연인의 사진까지 지참해서 오라고 하더라. 원하는 남성의 외모를 얘기하라고 해서 머뭇거리니, 기다렸다는 듯 파워포인트를 띄워준다. 강아지상, 고양이상, 공룡상, 아랍상(?), 안경상, 공대상 중 고르라고 했다. 그러고보니 전 남친들은 안경 쓴 공돌이 상이었다. 그렇게 내 이상형을 얘기하는 시간이 끝나고, 나에 대한 팩폭이 들어왔다. 살을 빼야한다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 나이 대의 젊은 남자 상담사가 그렇게 면전에다 얘기하니까 조금 따가웠다. 내가 힘들게 쌓아온 커리어나 인격이 무시되고 외모만 중시하는 느낌이었다. 근데 다이어트해라 정도는 결정사가 아니어도 아무나 얘기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전문성을 느끼지 못했다. 생긴지 얼마 안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기는 탈락.


두번째로 간 노블사는 압구정에 있었다. 안쪽에 있는 프라이빗한 사무실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딱 봐도 경륜있어보이는 여자 전무님이 들어왔다. 이 분하고는 오기 전에 전화상담을 했었는데, 나의 프로필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시는 듯 했다. 들어오시면서 내 프로필을 보고 놀랐다며,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해보고 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첫번째 회사보다는 내 경력에 대한 존중이 느껴졌다. 부모님 직업, 나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과정까지 디테일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리고선 파일을 열어 내가 만날 수 있는 남성들의 리스트를 주셨다. 


두 장의 엑셀 표에는 남성들의 나이, 키, 직장, 연봉, 집안 자산까지 빼곡히 적혀있었다. 맨 위에는 100억대 자산가까지... 내가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조건이 좋은 분들이었다. 2시간동안 이어진 상담동안 컴퓨터로 실제 회원들의 프로필과 매칭과정, 성혼사례를 보여주셨다. 의사들이 많았다. 


나는 대화가 통하는 걸 중요시해서 똑똑한 사람이면 좋겠다, 나랑 비슷하게 아이비리그나 스카이는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곳의 최소 가입비는 600만원이었고, 나는 최소 가입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무님은 내게 2천만원짜리 프로그램을 권유했다. 대신 소개는 무제한. 여기에 성혼비 1100만원은 별도. 예상보다 많이 초과한 금액이어서, 첫 상담에 등록하면 20% 할인이었지만 조금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나왔다.


마지막에 간 노블사는 두번째 회사보다는 인테리어가 덜 화려했지만, 모던했다. 미국 유학파 결혼을 위주로 한다고 해서 가장 기대가 되었던 곳이었다. 두번째 회사와 비슷한 상담이었는데, 세일즈는 덜 하고 스펙이나 조건보다는 나의 이전 연애가 어땠는지에 대해서 많이 물어보셨다. 그래서 조금 더 신뢰감이 갔다. 그리고 아까보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도 해주었다. 내 직업이 정치인이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직업이라 매칭이 다소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코멘트도 좋았다. 이곳의 최소 가입비는 10회 소개에 370만원 정도였고, 단계가 높아질수록 더 비싸졌다. 상담사(나중에 알고 보니 대표였다. 이 분도 나를 검색해보고 직접 상담하고 싶었다고 했다)가 상담 후 내게 권해준 프로그램은 880만원이었다. 여기에 성혼비 1100만원 별도. 한 사람 만나는데 90만원인 셈...아까 들은 2천만원보다는 저렴했지만, 여전히 비싸다. 프로그램과 성혼비를 합치면 여기도 2천만원이니까. 과연 10회 동안 인연을 만날 수 있을까... 


가격을 차치하고 특별히 인상에 남았던 질문은, 내가 여자로서 어떤 면을 가지고 있는 것 같냐는 질문이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누군가와 만날 때 나는 나로 다가갔지, 나의 이런 여성적인 면을 어필해서 이 사람을 만나야겠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만큼 순진하니까. 실제로 대표가 내게 애기같다고 하더라. 하지만 이곳은 결정사이고, 진지하게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한번쯤은 꼭 해봐야했던 생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받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오면서 대표는 나를 배웅해주며 여기는 고객님들이 보수가 95%라고, 웃으면서 잘 맞을거라고 스몰토크를 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 나는 하루 일정을 비워놓고 쉬었다. 생각이 많아져서. 880만원이라는 거금을 쓸 가치가 있는걸까. 만약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그때 할 걸 하고 시간을 놓친 뒤 후회하지는 않을까.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말도 있었고, 그 880만원으로 필라테스, 자기관리해서 연애하는 게 낫겠다는 친구, 절대 안한다는 친구도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880만원으로 자기관리를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880만원만 내면 된다면 이를 악물고 했을 것 같은데, 성혼비로 추가로 1100만원을 내야하는 것이 부담이 됐다. 정신적으로는 꽤 피곤했지만, 그래도 결정사에 가서 결혼시장에서의 나의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됐다. 살은 빼야하지만, 생각보다는 내 조건이 좋은 편이구나를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이렇게 거금을 내고 결혼을 한다니, 우리나라가 저출산인 이유를 알 것도 같단 생각이 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쌌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노블사를 찾아가서 그랬겠지만, 일반사를 갔다하더라도 3, 400인데 그것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니까. 또 직업병이 도져서, 결혼중개관리법이 소비자에게 환불이 매우 어렵도록 되어있어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 법을 고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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