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교실에 들어왔다. 조용한 교실 정면에, 정갈한 판서가 눈을 사로잡는다. 3학년 부장님은 보는 사람이 기분 좋아질 만큼 예쁜 글씨체를 가지셨다. 글자마다 개성이 넘치는데 모아 놓으니 조화로운, 생동감 넘치는 글씨체. 글씨에 자신이 없고 판서가 어려운 나는 부러울 따름이다.
나의 학창 시절, 대부분의 여자 아이들이 글씨를 잘 썼다. 여자 아이가 글씨가 안 예뻐서 놀렸던 기억도 있다. 남자들도 곧잘 쓰는 애들이 있었고, 글씨를 엉망으로 쓰면 선생님께 혼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글씨 잘 쓰는 아이를 만나기 쉽지 않다. 남자 아이들은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어 워드로 작성해 오라고 할 때도 있다.
그 시절에는 글씨 잘 쓰는 게 큰 장점이었다. 선생님께 칭찬도 들을 수 있고, 특히나 편지나 카드를 많이 주고 받던 때라 글씨가 안 예쁜 친구들은 대필을 부탁하기도 했다. 나도 친구들의 편지를 대신 써주기도 했다.
나의 글씨는 왜 예쁘지 않을까? 초등학교 시절 미농지를 잔뜩 사서 글씨 연습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이 힘들고 괴로웠다. 그 시절 나는 차분하고 진득한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때 바로잡지 못한 내 글씨체는 중학교 내내 노력했음에도 애매하게 굳어져 버렸다.
선생님들의 손 글씨를 볼 일이 종종 있다. 예쁘고 깔끔한 글씨를 보면 사람이 달리 보인다. 멋진 글씨를 가진 남자 선생님들은 글씨만큼이나 멋져 보인다. 글씨 쓸 일이 줄어드는 사회가 되면서 글씨체의 중요성은 줄어든 것 같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예쁜 글씨체를 가진 사람이 귀해졌다는 말이 아닐까? 쪽지 하나 주면서 뽑을 수도 없는 일, 급하게 쪽지를 건네받았는데 인쇄한 것처럼 정갈한 글씨라면 어떨까?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가 갖는 힘을 믿는다. 화면 가득 쏟아져 나오는 디지털 글씨보다 따뜻한 감촉이 살아있는 손 글씨가 마음에 든다. 나는 교사가 된 후 글씨를 쓸 때 노력을 기울인다. 더 반듯하게, 더 균형 있게. 나는 아직도 예쁜 글씨체를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