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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단상 10]교수님은 왜 주식투자로 마이너스였을까?

by 여철기 글쓰기

제가 학부 시절 들었던 '투자론' 수업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교수님은 미국에서 돌아오신지 얼마 안 된 젊은 분이셨죠. 뭔가 스마트 해 보여서 금융권에 계시던 분 같은 느낌? 미래 취업을 생각하던 학생들에게는 멋있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열정은 있었으나, 수업 내용은 온통 CAPM, 옵션가격이론 같은 딱딱한 공식들 뿐이라 조금 실망했었죠. 교실에 앉아 있는 저희는 사실 이런 공식보다는, '이론을 배우면 우리도 워렌 버핏처럼 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었죠.


그렇게 이론만 가득한 수업이 이어지던 어느 날, 한 학생이 용기를 내어 질문을 던졌습니다.


"교수님, 투자론을 가르치시니 주식으로 돈 많이 버셨죠?"


모두가 궁금해했던 질문이었습니다. 강의실에는 작은 술렁임이 일었고, 저희는 내심 '역시!' 하는 대답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멋쩍게 웃으시며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주식투자로 마이너스입니다."


그 한마디에 강의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교수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는 제게 평생 잊히지 않을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주식시장은 사람들의 심리가 지배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항상 논리적이지 않죠."


교수님은 칠판에 빼곡히 적힌 공식들을 잠시 뒤로하고,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완벽한 이론을 적용해도, 갑작스러운 공포나 탐욕이라는 감정 앞에서는 모든 논리가 무너져 내린다고요. 자신이 바로 그 감정을 이기지 못해 손실을 봤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투자는 단순히 숫자를 계산하는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요.


차트를 분석하고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흔들리는 마음을 다스리는 '마인드 컨트롤'이구나.


교수님의 실패는 제게 실패가 아닌, 오히려 큰 가르침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론은 지도를 그리는 방법일 뿐, 실제로 길을 걸으며 마주하는 바람과 파도는 다른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공식과 이론을 배웁니다. 하지만 삶은 공식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흔들릴 때,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요?


교수님은 가장 완벽한 이론을 가르치셨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이론을 뛰어넘는 '마음의 힘'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투자를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모든 지식은 결국 삶이라는 항해를 위한 나침반일 뿐입니다. 그 나침반을 들고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는 건 결국 우리 마음의 몫입니다.


어쩌면 교수님은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투자론'을 몸소 가르쳐주셨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교과서에는 없는, 진짜 삶의 지혜를 말이죠.


P.S. 저는 증권사 출신(오래된 과거)이기도 합니다. 주식으로 돈을 벌었을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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