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낯선 두려움-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된 악몽
그날은 정말 평범한 하루였습니다. 회사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했습니다. 평소에도 하루에 3-4잔은 기본으로 마시는데 이런 적은 없었으니까요.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지더니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숨을 쉬려고 해도 공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손에 쥐고 있던 볼펜이 떨리기 시작했고,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습니다.
'이상하다. 뭔가 잘못됐다.'
주변에서 "괜찮아?"라고 물어봤지만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목구멍이 조여와서 말이 나오지 않았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습니다. 마치 현실에서 한 겹 떨어진 곳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흐릿하고 멀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죽는 건 아닐까
그때 저를 지배한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였습니다. '혹시 심장마비인가? 뇌졸중인가? 아니면 정말 죽는 건가?'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머릿속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42년을 살아오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그건 정말 온몸에 소름 돋는 ‘죽음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사람들이 다가와서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했고, 저도 그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상태로는 일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가까운 응급실로 향했는데, 택시 안에서도 계속 떨렸습니다. 기사 아저씨가 "많이 아프세요?"라고 물어봤지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간호사에게 증상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숨을 쉴 수가 없어요..." 겨우겨우 말을 꺼냈습니다.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
심전도, 혈액검사, 흉부 X-ray... 온갖 검사를 다 받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모든 수치가 정상이었습니다. 의사는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아까 그 끔찍한 경험은 뭐였지?'
혼란스러웠습니다. 분명히 죽을 것 같았는데, 몸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니. 제가 꾀병을 부린 건가요? 아니면 정신이 이상한 건가요?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스트레스나 과로 때문일 수도 있어요. 좀 쉬시고, 만약 또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세요." 의사의 말에 기분이 묘해졌습니다. 정신과? 제가요?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계속 생각했습니다.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아니면 정말 단순한 스트레스였을까?'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아산병원
그런데 며칠 후, 또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지하철에서였습니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하더니 숨이 막혀왔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끼여 있는데 도망칠 곳도 없었습니다. 정말 지옥 같은 10분이었습니다.
그 다음 주에는 회의 중에, 또 그 다음에는 친구들과 식사하던 중에. 점점 자주 일어났습니다. 언제 또 그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모든 것이 두려워졌습니다. 사람 많은 곳, 밀폐된 공간, 심지어 혼자 있을 때도 불안했습니다.
'이제 정말 뭔가 해결책을 찾아야겠다.'
그래서 아산병원에 예약을 잡았습니다. 솔직히 정신과에 간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상태로는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알게 된 이름
아산병원에서 만난 의사선생님은 제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어주셨습니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어떤 상황에서 주로 일어나는지, 어떤 증상들이 나타나는지... 하나하나 세밀하게 물어보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들었습니다. "증상은 미주신경성 실신인데, 원인은 공황장애로 보입니다."
공황장애. 그때까지 TV나 인터넷에서만 들어봤던 단어였습니다. 설마 제가요? 저는 멘탈이 강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스트레스 관리도 나름 잘한다고 자부했는데.
"공황장애는 생각보다 흔한 질환입니다.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공황발작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인데, 신체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어도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의사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니 그동안 제가 겪었던 모든 증상들이 설명됐습니다. 심장 두근거림, 호흡곤란, 식은땀, 현실감 상실... 모든 게 공황발작의 전형적인 증상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나를 극한으로
"최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나요? 큰 변화나 어려움을 겪으신 적은 없으신지요?"
의사선생님의 질문에 생각해보니, 2015년 말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16년부터 혼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정말 무리했습니다. 안정적인 월급쟁이에서 하루아침에 불확실한 사업가가 된 것입니다.
매달 나가는 각종 고정비용들. 수입은 일정하지 않은데 나가는 돈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잠들기 전에도 '내일은 얼마나 벌 수 있을까', '이달 월세는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요. 사업이니까 원래 이런 거 아닌가요?"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 것 같네요.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려고 하셨겠지만, 스트레스가 한계점을 넘어서면 이런 식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뭔가 깨달았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저는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습니다.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 가족들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부담감,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끝없는 자기 의심.
하지만 제 몸과 마음은 이미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말입니다.
이제 시작인 걸 알았습니다
진단을 받고 나니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뭔가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언제쯤 나아질 수 있을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치료는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지만, 충분히 좋아질 수 있습니다. 약물치료와 함께 생활습관도 바꿔나가셔야 해요"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병원을 나서면서 생각했습니다.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그동안 저도 모르게 저를 혹사시켜온 시간들,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던 나날들. 이제는 그것들과 작별해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아직 몰랐습니다. 공황장애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진짜 힘든 시간들은 이제부터였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