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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23. 연구계획서, 왜 혼자 쓰면 실패할 확률 높나

-두 개의 세계를 잇는 다리-

by 여철기 글쓰기

연구개발계획서를 작성해보신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겁니다. 처음 빈 페이지를 마주했을 때의 막막함과 함께, '과연 이게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 순간들을 말이죠. 특히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려 할 때 그 부담은 더욱 커집니다.


연구개발계획서는 크게 기술성사업성 두 축으로 구성됩니다. 기술성은 개발하고자 하는 기술의 혁신성, 실현 가능성, 기술적 차별화를 다루고, 사업성은 시장성, 경제적 파급효과, 상용화 전략 등을 포괄합니다. 언뜻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이 두 영역은 서로 다른 전문성과 사고방식을 요구하는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기술자 출신 대표가 직접 계획서를 작성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두 분야를 동시에 깊이 있게 이해하는 내부 인력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기술 개발팀은 기술적 우수성과 구현 방법에 집중하는 반면, 사업 기획팀은 시장 동향과 수익 모델에 더 관심이 많죠.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연구개발계획서라는 통합적 관점이 필요한 문서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혼자만의 한계, 보이지 않는 함정


혼자서 계획서를 작성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인지적 편향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라도 자신의 전문 분야와 경험의 범위 내에서만 사고하게 되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술 개발자가 혼자 작성하는 경우, 기술적 세부사항에는 매우 정확하지만 시장성 분석이나 사업 모델 설계에서 현실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훌륭한 기술이면 당연히 시장에서 성공할 것"이라는 기술 중심적 사고에 빠지기 쉽죠. 반면 사업 기획자가 주도하는 경우, 시장성은 잘 분석하지만 기술적 실현 가능성을 과대평가하거나 개발 일정을 비현실적으로 설정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합니다.


더 큰 문제는 확증 편향입니다. 혼자 작성하다 보면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고, 반대되는 증거나 리스크 요소들을 간과하게 됩니다. 이렇게 작성된 계획서는 표면적으로는 완성도가 높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맹점들을 놓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부의 시선 vs 외부의 시선


가장 흔히 발생하는 문제 중 하나는 내부 관점의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특정 기술이나 분야에 몰입해온 내부 인력들은 그들만의 언어와 논리 구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당연하고 명확해 보이는 내용들이 외부에서 보기에는 전혀 이해되지 않거나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에서 "딥러닝 알고리즘의 정확도를 5% 향상시켰다"는 내용을 계획서에 기재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개발팀에게는 이것이 엄청난 성과일 수 있지만, 평가위원이나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래서 이게 시장에서 어떤 차별화된 가치를 만들어내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외부 관점만으로 작성된 계획서는 화려한 시장성 분석과 사업 모델을 제시하지만, 막상 기술적 실현 방법이나 개발 로드맵에서는 구체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술 전문가가 보기에는 "이론상으로는 맞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한" 계획으로 비춰질 수 있죠.


협업이 만들어내는 시너지


성공적인 연구개발계획서는 다양한 관점의 유기적 결합에서 나옵니다. 기술 전문가의 깊이 있는 기술적 통찰력과 사업 전문가의 시장 감각, 그리고 외부 전문가의 객관적 시각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합니다.


실제로 우수한 평가를 받는 연구개발계획서들을 분석해보면, 대부분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입니다:


기술적 차별화가 명확하면서도 시장의 니즈와 정확히 연결되어 있고, 실현 가능성상용화 전략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런 균형잡힌 계획서는 혼자서는 만들어내기 어려운 결과물입니다.


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건설적인 충돌도 중요한 가치를 만들어냅니다. 기술자가 "이 기술은 혁신적이다"라고 주장할 때, 사업 기획자가 "그런데 고객이 정말 이걸 원할까?"라고 반문하는 순간, 진짜 가치 있는 아이디어가 탄생합니다. 외부 전문가가 "이 설명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라고 지적할 때, 더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논리 구조가 만들어지죠.


외부 관점의 필수성


특히 외부 전문가의 참여는 계획서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핵심 요소입니다. 해당 분야의 다른 회사 경험자, 학계 전문가, 또는 관련 산업의 전문 컨설턴트 등이 참여하면 내부에서는 보지 못했던 관점들을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외부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집니다:

"경쟁사 대비 정말 차별화된 기술인가?"

"이 기술이 해결하는 문제가 시장에서 충분히 중요한가?"

"개발 완료 후 시장 진입 전략이 현실적인가?"

"예상되는 리스크에 대한 대응책이 구체적인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에서 계획서는 더욱 탄탄해지고, 실현 가능성 높은 프로젝트로 발전하게 됩니다.


성공하는 계획서의 비밀


결국 연구개발계획서 작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성균형입니다. 한 사람의 뛰어난 전문성보다는, 여러 관점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통합적 시각이 더 큰 가치를 만들어냅니다.


물론 협업에는 시간과 비용이 더 들어갑니다.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도 쉽지 않죠. 하지만 이런 초기 투자 및 노력이 나중에 계획서의 성공 확률을 크게 높여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연구개발계획서는 단순히 서류가 아닙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약속이자, 혁신을 현실로 만들어갈 로드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각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번 연구개발계획서를 작성하실 때는 꼭 기억해 주세요. 당신의 전문성에 다른 사람들의 관점이 더해질 때, 비로소 진짜 가치 있는 계획서가 탄생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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