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일하면,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최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로봇 바리스타가 능숙하게 커피를 만드는 모습을 보니, 이제 정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가 온 것 같더라고요.
육체노동은 이미 로봇들이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장에서는 24시간 쉬지 않고 일하는 로봇 팔들이, 창고에서는 짐을 나르는 자율주행 로봇들이, 식당에서는 음식을 서빙하는 저가의 중국로봇들이 활약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제 정신노동마저 AI가 침범하고 있습니다. 변호사의 판례 검색, 의사의 진단 보조, 기자의 기사 작성, 심지어 작가의 글쓰기까지도 말이죠.
그렇다면 인간은 정말 무엇을 해야 할까요?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길
가장 암울한 시나리오부터 생각해볼게요. 인간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오직 "생산성"과 "효율성"에서만 찾는다면, 우리는 정말 쓸모없는 존재가 될 수도 있어요. 로봇보다 느리고, AI보다 부정확하고, 게다가 휴식도 필요하고 감정적이기까지 한 인간 말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을 잃고 "나는 실패한 존재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산업혁명 초기에 기계에 밀려난 수공업자들이 느꼈을 좌절감처럼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기본소득에 의존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디스토피아적 미래 말이에요.
하지만 잠깐, 정말 그럴까요?
"인간답게 사는 것"의 재발견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이건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해방일지도 모르겠어요.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벗어나 진짜 인간다운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거니까요.
로봇이 힘든 일을 대신해주고, AI가 복잡한 계산을 대신해준다면,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바로 기계가 절대 할 수 없는 것들 말이에요.
사랑하기, 꿈꾸기, 창조하기, 철학하기, 놀기, 관계 맺기...
생각해보세요. 로봇이 아무리 정교하게 연주를 해도, 인간이 실연의 아픔을 담아 부르는 노래만큼 가슴을 울릴 수 있을까요? AI가 아무리 훌륭한 시나리오를 써도, 인간의 삶의 경험과 감정이 녹아든 이야기만큼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을까요?
새로운 직업들의 탄생
이미 우리 주변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직업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로봇 심리 상담사 (로봇이 오작동할 때 인간의 관점에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 AI 훈련사 (AI에게 인간의 정서와 맥락을 가르치는 사람), 디지털 디톡스 코치 (기술에 지친 사람들에게 아날로그적 삶을 안내하는 사람) 같은 직업들이요.
웃긴 건, 이런 직업들은 모두 "인간성"을 핵심으로 한다는 점이에요. 결국 기계가 발달할수록 순수한 인간성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해결하는 인간"의 DNA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는 항상 위기를 기회로 바꿔온 존재들이에요.
농업혁명으로 수렵채집 생활이 끝났을 때, 산업혁명으로 농업 중심 사회가 바뀌었을 때, 정보혁명으로 제조업 중심 사회가 변화했을 때... 매번 "이제 끝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인간은 새로운 길을 찾아냈어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로봇과 AI가 기존 일자리를 대체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가치 창출 방법을 찾아낼 거예요. 그것이 바로 인간의 DNA니까요.
철학하는 인간, 행복한 사회
개인적으로는 좀 더 낙관적인 미래를 그려보고 싶어요.
로봇과 AI 덕분에 기본적인 노동에서 해방된 인간들이, 진짜 중요한 것들에 시간을 쓸 수 있는 사회 말이에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고, 철학적 사색에 잠기고, 예술을 창조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회요.
물론 이런 전환 과정에서 혼란과 갈등이 있을 거예요. 모든 사람이 갑자기 철학자나 예술가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 전체가 "생산성"보다는 "행복"을, "효율성"보다는 "의미"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 같습니다.
결국, 인간은 인간답게
로봇이 만들어준 커피를 마시며 든 생각의 결론은 이거예요.
기계가 기계다운 일을 하게 되면, 인간은 비로소 인간다운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리고 인간다운 일이란 결국 사랑하고, 창조하고, 관계 맺고, 의미를 찾고,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라는 것.
어쩌면 로봇과 AI의 등장은 인간에게 "너희는 정말 무엇을 원하느냐?"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그 답이 생각보다 아름다울 거라고 믿어요. 인간은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요. 항상 해결해왔고, 항상 더 나은 길을 찾아왔으니까요.
P.S. 이 글을 쓰는 지금도 AI가 도와주고 있다는 게 좀 아이러니하긴 합니다. 하지만 이 글에 담긴 고민과 상상은 순수하게 인간인 제 것이라는 점에서, 라이벌이 아닌 파트너로써 봐야하는 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