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침묵에 대한 작은 생각-
오늘 아침 마당을 나서다가 개미 한 마리가 발밑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작은 생명체를 내려다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개미가 나에게 기도하고 있다면? 만약 이 개미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우리가 모르는 개미의 기도
개미의 눈에 비친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거대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때로는 파괴적이고, 때로는 자비로운 존재.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나 자신들의 집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기도 하고, 때로는 설탕 조각이나 빵부스러기 같은 선물을 내려주기도 하는 신비로운 존재 말이다.
그런데 여기 흥미로운 점이 있다. 개미가 정말로 우리에게 기도하고 있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전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개미들이 촉각을 흔들며 무언가 간절히 호소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그저 평범한 개미의 움직임으로만 보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와 신 사이의 관계와 놀랍도록 닮아있지 않을까?
차원이 다른 존재들
개미와 인간 사이에는 엄청난 크기의 격차가 있다. 물리적 크기뿐만 아니라 인지능력, 시공간 인식, 생각의 복잡성에서도 그렇다. 개미가 아무리 똑똑해도 인간의 의도나 감정, 생각을 이해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인간과 신 사이에도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의 격차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고 있지만, 그 기도가 신에게는 마치 개미의 작은 움직임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무관심한 발걸음
길을 걷다가 개미집을 밟아버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도 않는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다. 단순히 개미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개미들에게는 아마 갑작스러운 재앙이었을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집이 파괴되는 참사 말이다. 그들은 아마 "왜 신이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라고 절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신'인 우리는 그저 목적지를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
때로는 자비로운 신
반대로 공원에서 아이들이 개미에게 과자 부스러기를 주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아이에게는 단순한 호기심이나 재미였겠지만, 개미들에게는 하늘에서 내린 만나와도 같았을 것이다.
이때 개미들은 생각했을까? "신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라고. 아니면 그저 운 좋은 우연이라고 여겼을까?
침묵하는 이유
신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응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응답을 알아차릴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장마가 오고 물이 넘쳐 개미집이 잠기게 생겼다. 나는 개미들에게 경고를 하고 싶지만, 개미들에게 알려줄 방법이 없다. 그리고 발생한 홍수는 개미들에게 역사에 남을 자연재해가 되리라. 예전 '노아의 방주'처럼.
신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무언가 말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그저 일상의 소음이나 우연한 사건들로만 들릴 뿐일 수도 있다.
관찰자의 시선
생물학자가 개미를 관찰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는 개미들의 행동을 면밀히 살펴보고, 그들의 생태를 연구하고, 때로는 실험을 위해 환경을 조작하기도 한다. 개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생물학자에게는 모두 명확한 목적과 의미가 있다.
혹시 우리도 누군가의 관찰 대상은 아닐까? 우리가 겪는 시련과 축복, 기쁨과 슬픔이 모두 어떤 거대한 연구의 일부일 수도 있지 않을까?
다른 관점에서 본 기적
개미에게 설탕 한 덩어리는 기적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그저 부엌에서 흘린 설탕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기적'들도 신의 관점에서는 아주 사소한 일상일 수 있다.
비가 내려 가뭄이 해갈되는 것, 우연히 만난 사람이 도움을 주는 것, 위험한 순간에 간발의 차이로 사고를 면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는 하늘의 은혜지만, 신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의 흐름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허무해질 수도 있다. 우리의 기도가 의미가 없다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개미를 보며 다시 생각해본다. 개미가 우리에게 기도하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개미는 살아있다. 그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집을 짓고, 먹이를 모으고, 동료를 돌보고, 다음 세대를 기른다.
마찬가지로 신이 우리의 기도를 듣는지 모르지만, 우리도 살아있다. 사랑하고, 꿈꾸고, 창조하고, 서로를 돌본다.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마지막 생각
개미집 옆을 지나치며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혹시 신도 우리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 작은 존재들이 나에게 무언가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가끔 작은 도움은 주고 싶지만, 그들이 그것을 내 뜻으로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신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차원이 다른 존재 간의 소통 불가능성에서 오는 안타까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안타까움 속에서도, 우리는 각자의 개미집에서 오늘도 성실히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하늘을 쳐다본 개미는 어느 한 인간과 눈이 마주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