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단상 39. 거스를 수 없는 물결 앞에서

by 여철기 글쓰기

연세대에서 벌어진 일은, 어쩌면 예견된 풍경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600명이 듣는 ‘자연어처리(NLP)와 챗GPT’ 수업의 비대면 중간고사에서, 학생들이 카메라에 얼굴과 손을 비추며 시험을 치렀는데도 AI를 활용한 부정행위 정황이 드러났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2025년 11월).


화면의 각도를 조금 틀고, 창을 겹쳐 띄우는 방식으로 ‘금지된 도움’을 받아냈다는 이야기. 그 장면을 상상하니 묘한 기분이 듭니다. 학생들은 필사적으로 사각지대를 찾아내고, 교수는 자수를 권고합니다. 캠퍼스는 잠시 숨을 멈춥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과 싸우고 있는 걸까요?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9명 이상이 이미 과제나 자료 검색에 AI를 활용하고 있습니다(2024년 8월). 그런데도 대교협 설문 결과를 보면, 생성형 AI 관련 정책이나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대학은 일부에 그쳤고 약 77%는 아직 구체적 기준조차 없는 상태입니다. 학생들은 이미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데, 대학은 여전히 과거의 방식으로 평가하려 하고 있는 겁니다.


“나만 안 쓰면 학점을 따기 어려울 것 같았다”는 한 학생의 고백은 씁쓸합니다. AI 사용이 부정행위가 되는 환경에서, 정직하게 시험을 보는 학생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다고 느끼는 상황. 이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요?


해외 대학들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미국의 노스이스턴대학, 다트머스대학, 시러큐스대학 등은 캠퍼스 단위로 AI 도구를 도입하며 교육 과정에 통합했습니다. 런던정치경제대학(LSE)도 생성형 AI를 교육에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공식 가이드라인을 공개하며, 수업 현장에서 적용 방식을 조정해 가는 중입니다. 미국 조지아공과대학은 2016년부터 AI 조교 ‘Jill Watson’을 수업에 투입했는데, 학생들은 한 학기 내내 그것이 AI인 줄도 모를 정도로 자연스러웠다고 합니다.



핵심은 AI를 막는 것이 아니라, AI와 함께 사고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대학이 단순히 정답을 제공하는 AI가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 과정을 거치도록 돕는 ‘학습형 AI’를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뱁슨칼리지에서는 학생들이 AI 에이전트를 협업자로 활용해 비즈니스 전략을 수립하는 수업을 진행합니다. AI는 도우미가 아니라 함께 생각하는 파트너가 되는 거죠.


어쩌면 우리는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할 시점인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AI 사용을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AI와 함께 더 깊이 생각하게 할 것인가”로요.


시사IN의 실험에서 AI가 한국 수능 국어에서 2등급을 받았다는 보도가 있습니다(다만 학습 데이터에 기출 문제가 포함됐을 가능성도 함께 언급되었습니다). 단순 암기와 정답 찾기로는 이미 AI를 따라잡기 어려운 영역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학은 무엇을 평가해야 할까요? AI를 활용해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여러 솔루션을 비교하고 선택하는 판단력, 그리고 그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힘. 이것이야말로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는 역량 아닐까요.


커리큘럼도 바뀌어야 합니다. 객관식 시험 대신 AI를 활용한 프로젝트 기반 평가, 구술 면접, 포트폴리오 제출 등 다양한 평가 방식이 필요합니다. 과정을 기록하고 사고의 궤적을 드러내는 과제가 중요해집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교수님들도 새로운 평가 방식을 배워야 하고, 대학 시스템 전체가 변화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처럼 AI와 숨바꼭질하며 학생들의 정직성만 문제 삼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연세대 사태를 보며 안타까운 건, 학생들이 나쁜 의도로 부정행위를 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나쁜 마음’이라기보다, 불리함을 피하려는 계산 속에서 움직였을 뿐입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규칙은 그대로인 상황에서요.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라면, 그 물결을 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AI는 이미 우리 곁에 있고, 앞으로 더욱 정교해질 것입니다. 이제는 대학이 먼저 변화할 때입니다. AI 시대에 걸맞은 교육과 평가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그것이 학생들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공정한 일일 테니까요.


참고자료

연합뉴스, 「연세대 중간고사 190명 ‘AI 커닝’ 사태」, 2025.11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대학생 AI 활용 조사, 2024.08

한국대학교육협의회, 「2024 KUCE 대학총장설문」

시사IN, 「AI에게 한국 수능을 풀게 했다」, 2024.07

Georgia Tech News, “Jill Watson, Round Three”, 2016

CIO Korea, 「대학 교육·행정에 생성형 AI 전면 도입, 美 뱁슨칼리지 사례」, 20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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