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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옥임 May 04. 2022

큰형님

올 장마 들어 오늘 아침 출근길에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굵은 장대비로 줄을 이은 출근 차량들이 눈길 거북이 운행처럼 천천히들 갔다. 집에서 일찍 나서는 바람에 여유있게 천천히 '안전이 우선이다'는 생각으로 출근을 했는데 주차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교실에 들어와서 가방을 정리하고 책상에 앉으려는데 "카톡"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그래서 핸드폰을 열어보니 전혀 생각지 않은 형님에게서 문자가 와 있다.  

"과연 우리는 터키국의 형제인가"라는 장문의 내용을 대강 훑어보고 나서 나중에 시간이 있을 때 천천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일단 형님에게 문자를 드렸다.

"형님, 좋은 정보 감사해요. 건강하시지요? 우리 형님 늘 건강하시길 기도하고 있어요."라고  보내드리자 잠시 후 답장이 왔다.

"고맙네~!! 동서도 즐겁고 행복한 나날이 되기를 빌겠네~~^^"


형님을 생각하며 금세라도 떨어질 눈물이 가득 고였다. 늘 감사한 마음이다. 고향으로 내려온 뒤 우리집에서 가족 모임을 한 번 가진 뒤로는 형님을 뵙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셨다는 형님은 칠순을 훨씬 넘기셨음에도 여전히 배우기를 즐겨하고 독서를 좋아하는 여린 감성을 지니신 분이다. 몇 년 동안 문화센터에서 실생활 영어회화를 공부하고 계시는데 너무나 재미있다고 하셨었다.


형님은 서울에서 사시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수지로 내려오셔서 가까이 함께 살게 되었다. 명절과 제사 때가 되면 멀리 사시는 다른 형님들보다도 가장 먼저 가서 도와드렸어야 함에도 직장에 다닌다는 이유로 형님은 늘 따뜻한 마음으로 나를 배려해 주셨다. 

"내가 해두어야 할 것들은 미리 해두었으니까 동서 피곤할 텐데 쉬었다가 천천히 와."


몸살로 자주 아팠던 나는 명절 때 한 번씩 큰집에 가지 못하고 앓아 누웠었다. 형님은 이런 나를 위해 음식 준비를 다 마치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혼자서 앓아 누워있을 내 모습이 눈에 선해서 왔다며 어머님과 함께 음식을 챙겨오셨었다.


늘 나를 염려하셨던 어머님과 이쁜 동서라고 불러주시는 형님을 가끔 생각하면서 목이 메이곤 했었다. 어머님은 살아생전

"약한 몸으로 네가 애쓴다."라시며 남편에게

"며느리가 애쓴다. 많이 도와주어라."하고 늘 말씀하셨었다.


어머님은 떠나고 안 계시지만 형님과 가까이 살 때 맛있는 것도 함께 먹고 많은 시간 함께 했으면 좋았을 텐데 못내 아쉽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명절과 제사 때 그리고 가족 공식 모임 외에는 찾아뵙지 못했으니 너무나 죄송하다. 내가 좋아하는 형님인데... 이런 날 두고 남편은

'당신이 안 좋아하는 사람 있어? 다 좋아하잖아."라고 할 테지만 특별히 마음에 와 닿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으니 남편이 알 리 없다.


마음 같아서는 1년에 한 번씩 형님들 모시고 최소한 1박 2일이라도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고 싶지만 마음처럼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다들 바쁘셔서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잡는 일도 쉽지 않으니 늘 건강하시기만 바랄 뿐이다. 

                                                           고향으로 내려온 이듬해 봄 가족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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