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교직에 있는 동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학급을 맡아서 기간제교사로 출근을 하고 있다. 담임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방학을 한 달 남짓 남겨두고 내가 긴급 투입, 담임이 교체된 셈이다.
교실에서 문제가 되는 아이들이 많아야 두세명인데 1학년의 이 반은 매우 특이한 상황이었다. 학기 초 입학 축하를 하기 위해서 교감과 교장이 순회하는데 여섯 개의 반 가운데 이 반의 분위기와 아이들의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며 담임이 매우 힘들 것 같다고 염려했었단다.
사실 인근 학교 3학년 출산을 앞둔 학급에 내년 2월까지 이미 예약을 해둔 상태였고 마침 사흘 비어있는 기간에 전화가 와서 급하게 출근한 1학년인데 인근 학교 출근 하루 전날이자 1학년 마지막 날인 오후에 교감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오시면 딱 좋을 상황인데 내일 그 학급에 담임이 배정이 된다는 연락을 교육청에서 지금 막 받았어요. 너무나 아쉽고 죄송해요.”라는 말에
“우리 아이들을 봐서는 담임이 배정되었으니 너무나 잘 된 거지요. 여기저기서 기간제교사 요청 전화가 오고 있으니 염려하지 말아요. 다음 기회 될 때 봐요.”
1학년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학급 분위기와 상황으로 보아서 하루만 견디면 다음 날인 금요일부터는 4월 한 달 기간제교사로 나갔었던 3학년에 갈 수 있다는 마음으로 기대에 차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담임의 건강치 못한 몸 상태로 여러 번 선생님들이 바뀌어서 들어가는 바람에 학급 분위기도 문제가 되고 있고 학부형들도 폭발 직전에 있다며 교장, 교감은 물론 학급 아이들과 동학년 선생님들도 내가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했었다.
인근 학교 3학년 출근 핑계로 1학년 문제 학급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진심 바랬으나 3학년 출근이 취소되었다고 하자 교감은 깜짝 반기며 1학년을 방학 때까지 맡아달라는 제의에 잠시 망설였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우리 1학년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상황이 급변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출근을 결정했다.
후문에 들으니 인근 학교 3학년 담임 배정이 취소가 되면서 교감이 멘붕에 빠졌었다고 한다. 오후에 긴급회의를 통해서 체육 전담교사를 3학년 담임으로 배정했다며 내가 가지 못한 것에 많은 아쉬움들이 있었다고...
반면에 우리 교감은
“우리 학교 상황으로 봐서는 선생님이 1학년을 맡아주신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몰라요.”라며 연신 감사하다 했었다.
1학년 친구들과 만난 첫날 1교시, 서로 인사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짐짓 조용하다 싶었다. 그런데 2교시가 시작되자 남학생 하나가 교실에 들어오지 않고 앞 뒷문을 여닫으며 앞뒤 전기를 연신 끄고 다닌다. 몇 친구들이 하지 말라며 소리를 질러대고 몇 아이들은 남학생을 따라다니며 반대 행동을 하고 있으니 교실 분위기가 갑자기 급변해서 긴급한 상황이 되었고 아수라장, 안하무인 상태가 되어버렸다.
가까스로 분위기를 안정시켜놓고 수업을 하려는데 이번에는 그 문제의 남학생이 복도에서 신발장을 딛고 올라서서 창문을 열어 소리를 질러댄다. 그러자 교실에 있는 아이들이 시끄럽다고 소리 지르지 말라며 다시 상황이 돌변 아수라장이 되는데 순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신발장에 있는 신발주머니들이 모두 바닥에 떨어진 모습들을 보고 나가서 신발주머니들을 올려놓느라 온통 난리 속이다. 신발주머니들을 올려놓고 들어오나 싶었는데 다음에는 문제의 남학생과 여학생을 잡으러 간다며 3층 계단으로 아이들이 우루루 뛰어 올라간다.
예전에 유행했던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야.”라는 말을 방불케 하는 장면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2교시 40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내가 보고 있는 장면이 어떤 장면들인지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고 알 수 없는 일이었으나 지금까지 그래왔단다.
그동안 이렇게 문제의 남녀 두 아이가 교실을 빠져나가면 교무실 실무사와 교감은 이 두 아이를 찾아다니느라 애를 먹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아동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를 방치하고 있다며 학교 탓만 하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동안 남녀 두 아이의 어머니들에게 교실에서 내 아이로 인해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교실 참관을 통해서 확인하시고 결코 방치 상황이 아니었으며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종용했지만 거부했다고 한다.
교실에서 한바탕 난리를 친 후 두 아이가 빠져나갔다고 해서 교실 상황이 달라질 게 전혀 없었다. 대신 남아있는 다른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고 서로 시끄럽다며 울고 불고.... 시장 속이 따로 없고 전쟁판이 따로 없다. 참으로 기이한 장면들이었다.
상황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이 작은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과 우리 아이들이 지금까지 이런 상황을 어떻게 견뎌왔을까? 잘 해보려고 애쓰고 용을 썼을 담임의 모습이 눈에 그려져서 안쓰러웠다. 결국 더 이상 견딜 수 없고 건강에 이상 신호가 나타나서 쉬기로 했다는 용단이라니 더 늦기 전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많은 아이들을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지도를 해야 할까? 도대체 이 지경이 되도록 무엇이 문제였을까?
사흘째 계속 앞 뒷문을 여닫고 불을 꺼대며 복도에 나가 창문을 열어놓고 소리를 질러대는 문제의 남학생을 잠자코 지켜보다가 더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에 용단을 내렸다.
그러잖아도 수업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복도에 나가 아이의 두 팔을 붙잡고 교실로 데리고 와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왼쪽 무릎을 꿇고 단호한 목소리로
“네 자리는 복도가 아니고 여기야! 수업시간에는 여기, 네 자리에 앉아 있어야만 해! 선생님은 네가 너무나 소중하고 귀해. 그러나 친구들 힘들게 하고 수업시간 피해 주는 너의 나쁜 행동은 선생님이 앞으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소중한 너를 위해서 선생님은 이쁘지 않은 너의 행동을 고쳐주어야 해.”라고 말하자 아무런 말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이의 눈물을 보면서 나도 함께 눈물을 줄줄 흘리자 선생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선생님은 네가 멋지게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하고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소중한 너도 많이 힘들었지만 친구들도 담임 선생님도 많이 힘드셨어. 그리고 선생님은 멋진 너를 생각하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어. 어때, 선생님하고 약속할 수 있어? 노력해서 멋진 사람 될 거라고?”라며 손가락을 내밀자 고맙게도 순순히 손가락을 내민다.
이 아이는 그날부터 밖에 나가 문을 여닫고 불을 끄며 복도에 나가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없어졌다. 아직은 수업에 참여하기 힘들어 하나 노력하는 모습으로 조금씩 그리고 하나씩 달라지고 있으니 분명 멋진 모습으로 달라질 거라 믿으며 반 전체 아이들 역시 기본 학습태도, 문제해결력, 생활습관, 친구배려 등이 개선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남자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나갔던 여자아이는 남자아이가 결석을 하면 교실에서 수업시간 아랑곳하지 않고 예제 돌아다니며 친구들을 방해하고 큰 목소리로 청개구리 대답을 했었다. 그리고 수업하는 선생님 주변을 맴돌며 말을 따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제 친구들이
“야, 네 자리로 들어가!”하고 말하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던 아이가 사흘째 되는 날 소인수학교로 전학을 간다고 연락이 왔다. 손녀의 교육을 주도하고 계시는 외할머니께서 문제의 남자아이 때문에 당신의 손녀가 힘들다며 손녀에게 맞는 학교로 가겠다고 했단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졌는지는 지금의 나로서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현 시점에서 귀하고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행하는 일이며 부디 우리 아이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