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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옥임 Jul 07. 2022

꼭 기억해야 해요

"할머니, 저 '이 지 원'이예요. 잊지 말고 꼭 기억해야 해요!"라며 등을 돌려 잠을 청하는 막내 지원이를 꼭 껴안고

"당연하지. 할머니가 왜 우리 지원이를 잊겠어."했다.


2주 자가격리 동안에도 할머니와 안방 침대에서 자겠다고 극구 고집을 피우더니 올라간지 2주 후 주말이 되어서 내려온 막내 지원이가 오늘도 노래를 하고 다닌다.

"나는 할머니하고 잘 거야!"


주방에서 한창 정리 중인데 우리 아이들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 훌쩍 넘어버렸다. 오랫만에 삼촌과 함께 내려와서 위 아래 돌아다니며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삼둥이들도 이야기 꽃이 핀 어른들도 잠자리에 들어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할머니, 빨리 들어가자!"라며 보채는 막내 지원이 말에

"그래, 먼저 올라가서 누워있어. 할머니 세수하고 올라갈게."하자

"아니야. 할머니 방에서 잘 거야."하고 안방 침대에 낼름 올라가 자리를 잡고 눕는다. 그래서

"지원아, 여기는 할아버지가 주무셔야 하니까 할머니하고 엄마한테 올라가서 자자."했지만 막무가내다. 꼭이 할머니 침대에서 자고 싶단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내일 가면 할머니하고 다시 만날 거잖아요."라는 지원이 말에 다들 폭소가 터졌다. 제 엄마가

"지원아, 할아버지 자리를 빼앗으면 할아버지는 쇼파에서 혼자 주무셔야 하잖아."라고 말하자 내심 마음에 걸렸던 듯 물 마시고 오겠다며 나가더니

"할아버지 들어와서 주무세요."한다.


지원이와 함께 잠자리에 누워서 한참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 이제 우리 자자."는 말에 등을 돌려 눕던 지원이가 문득 무슨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몸을 돌려 할머니를 부른다. 그리고 자기 이름을 또박또박 말한 후 잊지 말고 꼭 기억하라며 강조를 하는데 울컥했다.  


언제부터인가 자식들의 이름을 잊어버리기 시작했던 엄마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쪽같은 당신의 자식들 얼굴까지 모두 잊어버리고

"엄마, 나 누구야?하고 물으면

"몰라. 누구야?" 되물었고 자식들의 이름을 '언니, 오빠'라고 말했다.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말이 없어진 엄마는 하루종일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어느 세계에서 헤매고 다니는지 모를 안타까운 모습에 가슴이 너무나 아파서 소리내어 한 번 엉엉 울고 나서는 엄마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 역시 우리 가족들은 물론 주변 사람들, 내가 살아온 환경 등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고 우리 엄마처럼 미지의 세계를 헤맬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6살 어린아이 지원이가 마치 제 할머니의 머잖은 미래를 예견하고 자신을 잊지 말라며 미리 강조하는 느낌이 들어서 가슴이 먹먹했다.


남편은 가끔 기억력이 많이 떨어진 나에게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남편인 나는 잊어버리면 안돼!"라며 지인들에게까지

"이 사람이 나까지 잊어버릴까봐 걱정이 돼."하고 말하는 모습을 몇 번 봤었다.


우리 엄마처럼 가족들을 잊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마냥 두렵고 서글픈 일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다할 때까지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사랑하는 이들에게 정성과 최선을 다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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