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작업을 하다가 손등과 양팔에 무수히 퍼져있는 작은 검버섯들을 보고 문득 나이테가 생각이 나서 검색을 해보았다. 누군가가
'나이테는 나무의 강도를 나타내는 인내의 나이테로 나무를 더욱 단단하고 아름답게 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현실적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견딤의 힘을 통해서 인생의 미래를 환히 밝힐 수 있는 나이테.'라고 표현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손등과 양팔에 검버섯이 진을 치기 시작했다. 주근깨처럼 퍼지는 검버섯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었는데 오늘은 어렸을 때 보았던 동네 할머니의 새까만 검버섯이 생각나서 서글퍼졌다.
몸집이 작고 왜소했던 할머니의 깊이 패인 주름보다는 할머니의 작은 얼굴과 가느다란 팔을 새까맣게 덮어버린 검버섯들이 어린 나에게 충격이었다. 맛있게 쪄진 옥수수를 예쁘다며 건네주시는 할머니의 새까만 모습을 보고 무서워서 좋아하는 옥수수를 받지 못하고 냅다 도망쳐 왔던 기억이 난다.
육순에 접어든 무심한 나이를 먹고보니 할머니의 작은 얼굴을 온통 뒤덮었던 그 검버섯이 바로 오랜 세월 인고를 견디며 살아온 인생의 나이테였음을 깨닫는다. 철없던 시절 옥수수를 건넨 할머니를 거부했던 내 자신이 지금에 와서 후회한다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할머니의 아름다운 나이테를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야 깨달았으니.....
그럼에도 왜 서글퍼질까? 무서웠던 할머니의 아름다운 나이테가 이제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솔직히 두려워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검버섯은 내 온 몸을 싸고 돌 것이고 어렸을 때의 나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이 검버섯들을 지울 수만 있다면 말끔히 지우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어쩌랴. 당연한 노화현상인 것을... 새까맣게 검버섯이 낀 할머니의 모습을 거부한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고 노화로 인한 자연 현상임을 우리 아이들도 알 때가 올 테니 염려할 게 무엇이랴. 서글프고 두려운 것도 모두 순간이고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까마득히 잊고 살 게 분명하다.
오랜 세월 나이테의 넉넉한 그루터기처럼 나 역시 크고 작은 검버섯들이 짙어지고 늘어날수록 넉넉한 마음밭이 되도록 가꾸며 아름다운 나이테를 만들어가고 싶다. 아름다운 노년과 여생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