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말씀만 하소서
'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기차가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까지는 참아줬지만
88올림픽이 여전히 열리리라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내 자식이 죽었는데도 고을마다 성화가 도착했다고
잔치를 벌이고 춤들을 추는 건 어찌 견디랴.
아, 만일 내가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도 못하게 하련만......'
출처 - '한 말씀만 하소서' 저자 박완서
25년 5개월을 살다가 앞서 간 아들을 생각하며 애통한 심정을 토로한 박완서의 저서 '한 말씀만 하소서'의 일부 내용이다. 이유야 어떻든 어떤 아들이었건 부모 먼저 아들을 앞세웠다는 것은 가슴에 묻는 참척의 고통이라는 것을 남동생의 요절을 통해서 이미 통감했었다.
딸 셋에 이어서 간절한 바램으로 낳았던 당신의 귀한 아들을 교통사고로 보내고 나서 우리 엄마는 2년 동안 마치 숨이 멎은 사람마냥 세상 모르고 하루종일 깊은 잠만 주무셨다. 방학이 다가올 때면 잊지 않고 전화해서
"옥님아, 방학 언제 허냐?"하셨던 엄마가 언제부턴가 전화가 오지 않았다. 몸을 가누지 못하셨던 아버지는 엄마의 상태가 불안하셨던 듯
"너그 어매가 하루 종일 저렇게 잠만 잔다. 너한테 전화하는 것도 잊어버렸어. 저러다가 나보다 먼저 갈까 싶다."라며 당신보다 앞서 갈 엄마를 염려하셨다. 남편도
"아무래도 엄마가 먼저 돌아가실 것 같은데....."했었는데 2년이 지나고 나니 서서히 깨어나 예전의 모습을 찾으셨다. 그런데 예전의 엄마는 잠시, 그 잠시 동안 아버지 먼 길 보내드리고 다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셨다.
"너희 엄마가 상처가 커서 그래. 금쪽 같은 아들을 보냈으니 얼마나 아팠겠냐. 많이 힘들었을 거야."
"아들 보내놓고 너그 엄마가 그렇게 됐어."
"너희 엄마에게 그 아들이 어떤 아들이었냐."
"너그 어매가 말이 없잖냐. 혼자서 삭이느라 얼매나 힘들었겄어."
주변의 인척들이나 지인 분들께서 엄마의 아픔이 어느 정도인지 다소나마 이해하겠다는 듯 아파하고 안타까워들 하셨다.
그랬다. 우리 엄마는 힘들다, 아프다, 괴롭다, 속상하다 등의 말들을 하지 않으셨었다.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엄마가 되면 힘들어 하지 않고 마음 아파하지 않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늘 온순한 모습으로 온순한 치매가 걸려서 웃는 모습만 보이셨다. 요양보호사를 하면서 많은 분들을 겪어온 여동생이
"엄마는 정말 온순한 치매야. 수줍은 새색시마냥 항상 웃기만 하잖아."했었다.
철이 없는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우리 엄마의 숨막히는 슬픔을 애통함을 살피지 못했다. 가슴에 대못 하나 박아놓고 무거운 돌덩이 안고 그 험한 산을 넘느라 뼈를 깎는 고통으로 못내 힘드셨을 텐데도 오롯이 혼자서 감내하셨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그래서 '급속도로 치매에 걸리셨구나' 이제야 이해가 된다. 우리 엄마 돌아가신지 6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야...... 나이를 먹어보니 아들 잃은 슬픔이 어느 정도인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그 누가 감히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과 슬픔을 표현할 수 있을까?
나도 어느덧 중년의 아들을 둔 어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그 귀한 아들을 우리 엄마가 5살 때까지 키워서 올려 보내주셨었다. 코에 관을 꽂아 피를 뽑아내는 생후 8개월 병상의 외손자를 껴안고 가슴 조이며 애를 태웠을 우리 엄마에게 참으로 큰 잘못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언니, 이들이가 오늘밤을 넘기기 힘들대. 빨리 내려와야겠어." 울며 전화하던 바로 밑 여동생의 절규가 40년이나 흐른 세월 속에서도 내 가슴에 그대로 박혀서 아직도 생생하다. 밤을 새워 선 채로 기차를 타고 내려온 우리 부부에게 원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어렵지만 이 상황을 지켜봐야 해요. 아기가 건강하면 이겨낼 거고 그렇지 않으면......"하셨었다. 그런데
2주 후 원장님께서
"하나님이 살리셨어요. 잘 키우셔요!"하고 말씀하셨다.
온갖 정성으로 키워주신 엄마 덕분에 우리 아들이 건강했던 듯 그 무서운 병마를 떨쳐내고 퇴원하는 날 아침 원장님이 올라오셨다. 예제 링겔 주사로 앞 머리가 없어진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나님이 살리신 아들이니 잘 키우라는 말씀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아들이란다. 우리 엄마가 그리도 좋아하고 사랑하셨던 하나님이다. 결국 엄마의 간절한 기도로 우리 아들은 살아났다.
이런 아들이 잘 자라서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아들의 카톡 화면에 띄워져 있는 로이킴의 '살아가는 거야' 노래를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울 아들이 이렇게 힘들었고 힘들구나.'
로이킴(Roy Kim) - 살아가는 거야(Linger On) M/V
아들에게 엄마의 생각을 말로 하기보다 아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좋은 노래가 무엇이 있을까 유튜버 검색을 하다가 양희은과 폴킴이 함께 부르는 '엄마가 아들에게' 노래를 찾았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어서 아들에게 문자와 함께 보냈다.
"시간될 때 들어보렴. 엄마 마음이구나."
심금을 울리는…양희은(Yang Hee-eun)x폴킴(Paul Kim) '엄마가 아들에게'♪ 김제동의 톡투유2 14회
"노래가 마음 아프네. 고마워."
우리가 살았던 시대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시대가 더 좋은 환경이고 더 나은 사회이기를 늘 소망하고 있다. 한창 어렵고 힘든 이 시기에 넘어지고 쓰러져도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 부디 힘내고 씩씩하게 잘 살아가길 매순간 기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