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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 되면 늙어야 해

졸음 쉼터

by 이옥임

오랫만에 남편과 함께 외출을 했는데 먼저 학교에 들러 연말정산 작업을 마친 후에 곧바로 2025 새해 복맞이 귀농귀촌 신년회에 참석하기 위해 고산으로 출발했다.


고산으로 가는 길에 남편과 여러가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졸음쉼터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남편과 나는 졸음이란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게 뭐지? 매일 다니면서 보는데도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네."

출처 픽사베이

"여보, 매일 보고 다닌다면서도 생각이 나지 않는 건 문제있는 거 아니야?"

"그러게, 기억력이 많이 떨어진 거 같아."


그런데 문제는 나도 그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생각이 나지 않는 것에 대해 몰입 집중해서 기어코 생각해내는 건망증 초기가 60대 전후였다면 이제는 아예 포기해 버린다. 집중한다고 생각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순간 "아, 맞아. 이거였어!"할 때가 있기를 기다리게 된다.


"수면은 아니었어."

"그럼 뭐지? 갑자기 그 단어가 생각나지 않네....."


남편과 나는 그 단어를 생각해내기 위해 씨름하다가 까마득히 잊고 장시간의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다. 봉동에서 구이까지 가려면 전주시내 외곽도로를 타야 하는데 소요 시간이 연료 비용과 비교하면 차라리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것이 낫다며 고속도로로 진입하려는데 순간 착각하고 진입로를 놓칠 뻔했다. 길눈이 밝은 남편이 말도 안되는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죽을 때 되면 늙어야 해!"라는 말에 나는 그만 폭소가 터졌다.

"무슨 말이야?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이 맞지 않아?"하고 묻자 남편도 소리내어 웃는다.

"그래, 늙으면 죽어야지. 당신 웃기려고 한 말이야."

"내가 듣기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나오던데... 당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아니야?"


어순이 왜 바뀌었는지 더 이상 따져 물을 필요도 없이 중요한 것은 남편과 소리내어 웃는 동안 문득 '졸음쉽터'가 생각났다는 것이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아, 졸음쉽터였네. 왜 졸음이 생각나지 않은 거지?"

"맞아, 졸음쉼터야. 매일 오가며 보는데도 이상하게 전혀 생각이 나지 않네."


남편은 요즘 들어 부쩍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런데 오며가며 보는 단어를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은 심각한 수준이라는 생각에 내심 염려하고 있었는데 어순이 바뀌어서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 나를 웃기기 위해서 한 말이라니 남편의 진심을 알 리 없지만 웃기기 위해서 한 말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밖에......


단어가 왜 생각나지 않을까?에 대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말하다가 특정 단어가 기억나지 않아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블로킹(저지) 현상'이라고 한다. 블로킹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블로킹은 기억하고자 하는 정보 대신 연상된 불필요한 정보가 기억을 방해하거나 원하는 정보만을 선택해주는 신경계가 부족하면 발생한다.

한국정신건강연구소 황원준 원장은 "사람은 필요할 때 뇌에 저장된 기억을 꺼내쓰는데 이 과정에서 내면의 방해를 받기도 한다"며 "이는 기억력과는 상관이 없고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일 때 잘 생긴다"고 말했다.

블로킹 증상은 예방이 가능하다. 영구적으로 기억을 손실했거나 치매처럼 뇌손상에 의한 기억력 저하가 아니기 때문이다. (출처 헬스조선)'


칠순을 목전에 두고 있으니 건망증이라고 해도 맞는 말이다. 오며가며 본다한들 관심을 갖지 않고 스치듯 보게 되면 생각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물론 도로에 '졸음쉼터' 글자와 화살표를 크게 표기해서 필요한 분들에게 진입을 유도하고 있지만 그 역시 관심없이 다닌다면 눈에 띄지 않거나 무심하게 보게 된다.


남편의 기억력에 대해서 인터넷 검색 내용을 보고 위로를 받은 것은 영구적으로 기억을 손실했거나 치매처럼 뇌손상에 의한 기억력 저하가 아니라는 점이다. 향후 치매를 염려했었는데......


얼마 전에 돌아가신 지인의 어머니가 요양원에 가시기 전까지 극도로 염려하셨다는 치매는 사실 모든 분들의 공통 염려이고 불안이다. 내 마음대로 치매에 안 걸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방법이 있다면 건강 관리가 아닐까 싶다.


고향으로 내려와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3주 동안 치매 노인 요양원에서 실습을 했었다. 잠시도 잠자코 계시지 못한 분도 계셨고 끊임없이 중얼거리시거나 무엇인가를 고집스럽게 요구하시는 분들,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집에 가야 한다며 종일 조르시는 분, 요양원에 오기 싫었는데 자식들이 보냈다며 자녀들을 못내 원망하시는 분, 노모에게 한 번 붙잡히면 진종일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한다며 부러 피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노후 내 모습에 대한 만감으로 잠시 생각에 빠졌었다. 그 분들의 모습이 미래의 내 모습이 될 테니까.......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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