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와 누렁이
모성애를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솔로몬과 두 여인이 생각나게 하는 일이다.
코코는 우리의 첫사랑 큰 손녀가 지어준 이름이다. 그러니까 우리와 인연이 되어서 함께 한 지가 몇 해 되었다. 지인의 골드 리트리버를 통해서 코코가 블랙 래브라도 리트리버와 많이 닮았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순수 종은 아니겠지만 너무나도 비슷해서 리트리버라고 해도 가히 믿을만 하다.
남편을 통해 2번 태어난 코코는 생명 줄이 긴 천상 암놈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온순하고 차분하며 남편에게 매우 순종적이어서 남편이 특별한 애정을 쏟고 있는 아이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뒷집의 개인 모녀 두마리가 우리집에 올라와 터를 잡기 시작하면서 온순했던 코코가 특히 먹이 앞에서 이 녀석들이 꼼짝 못하도록 서열을 확실하게 잡아두었다.
남편이 코코와 함께 이 두 녀석들을 잘 챙겨주다보니 아예 우리집에서 살다시피 한다.
그런데 며칠 전에 이 어미가 난데없는 코코 집에 들어가서 새끼를 낳았단다. 코코가 보였다 하면 알아서 벌벌 길 뿐 아니라 납작 엎드리고 누워버리는 하늘 같은 코코 집에 들어가 새끼를 낳았으니 얼마나 급했으면 그랬을까?
희한하게 한 마리를 미숙아로 낳았다는 남편 말에 확인해보니 크기와 모습이 영낙없는 생쥐다. 강아지가 새끼 한마리를 낳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인데 이상하게 한 마리만 낳았을 뿐 아니라 너무나도 작은 것이 이상하다며 남편은 의아해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나가보니 기이한 일이 벌어졌단다. 코코가 새끼를 품고 있고 어미와 새끼인 바둑이는 보이지 않아서 부르니 뒷집인 자기 집에서 올라오더란다. 누렁이인 어미와 새끼인 바둑이가 자기 집에 내려가서 잔 모양이라고...
홀로 사시면서 자주 군산에 가셔서 지인들과 함께 노시느라 집을 비우시는 뒷집 아저씨께서 당신의 개가 새끼를 낳았다는 말을 들으셨는지 미역국을 끓여다 놓았다며 나를 보시더니
"아니, 바둑이 새끼인데도 바둑이를 새끼 근처에도 못오게 코코가 무섭게 으르렁 거리네!" 하셨다.
코코, 누렁이, 바둑이 3마리 가운데 새끼 바둑이만 숯놈인데 덩치는 제 어미만 하다. 시바견이 섞인 잡견으로 다리가 짧아 작은 개처럼 보이는 어미개 누렁이와 새끼 바둑이의 덩치와 키가 비슷하다. 바둑이는 숯놈이어서인지 천방지축 통제가 안되는 제 멋대인 놈이다. 호기심도 많고 궁금한 것은 못 참는 행동파다. 코코에게 그렇게 당하고도 그 때 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성격이 참으로 좋은 놈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바둑이의 어미인 누렁이는 겁도 많고 경계심이 많아 사람을 피해 다니는데 남편만은 예외다. 물론 처음부터 남편을 따랐던 것은 아니다. 먹이를 주기 위해 불러도 두 놈과는 다르게 멀찍이 서서 지켜보기만 했던 녀석이 언제부터인가 남편에게 꼬리치며 다가오기 시작했고 부르기만 하면 마음을 활짝 열고 달려와서 안기는 모습을 보면서 신기했다.
문제는 어미인 누렁이가 제 강아지를 품고 있어야 맞는데 강아지를 품고 있는 누렁이를 공격해서 자기 새끼도 아닌 코코가 품고 있다는 것이다. 코코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납작 엎드리는 누렁이가 늘 코코에게서 멀찍이 서 있는 모습인데 제 새끼라고 강아지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버티다가 코코에게 이마 부위를 물려서 온 몸에 피 난장판이었다고 한다.
물린 상처로 한동안 얼굴이 퉁퉁 부어 다니던 누렁이가 겨우 제 모습을 찾긴 했으나 오늘 또 물렸던 곳을 다시 코코에게 물린 것을 보니 제 새끼를 필사적으로 지키려다가 당한 모습이 틀림없다.
새끼를 빼앗아서 품고 있는 코코 때문에 남편이 새끼를 뒷집에 옮겨주고 코코는 목줄을 해두었다고 했었다. 그런데 코코가 어느새 탈출을 해서 뒷집 새끼에게 가서 품고 있더란다. 반복해서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으니 우리 코코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냥 온순하기만 했던 코코가 새끼에게 집착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안타깝다.
안타까운 것은 어미인 바둑이도 매 한가지다. 꼼짝 못했던 코코에게 제 새끼를 지키키 위해 반복해서 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예 새끼를 빼앗긴 꼴이 되어버렸다.
예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었다. 코코 집과 나란히 다른 개집이 있었는데 남편이 아침에 나가보니 코코가 강아지들을 품고 있더란다. 분명히 임신한 개는 옆의 다른 개였는데 코코가 강아지를 품고 있으니 코코가 낳았는지 옆의 개가 낳았는지 판단이 안 서는 상황이었다며 그 때는 새끼 수가 많아서 나누어 품게 했으나 이번에는 한 마리 뿐이니 참으로 딱할 노릇이라고 한다.
동물들을 키우면서 또 다른 인생 공부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