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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전주

모악산

by 이옥임

오래 전 그리이스를 가기 위해 경유한 곳이 도하였는데 시간이 많이 남는 관계로 낙타 체험을 하기 위해 공항 문을 여는 순간 숨이 턱 막혀서 나도 모르게 잡고 있던 문을 놓아버렸었다. 그 경험이 아직도 생생한데 올 여름 무더위가 도하에 미치지는 못해도 숨 막히는 폭염이었다.


질식될 것 같았던 그 도하의 폭염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시작이라니 물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도하의 폭염과 우리나라의 폭염이 아직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온도 차가 크다. 그 당시 도하는 50도라고 했었다.

폭염경보의 발령기준을 검색해보니 35도, 2일 이상일 때 발령한다고 한다. 처서가 지났음에도 전혀 꺾이지 않던 날씨가 9월 중순이 넘어서야 폭염경보 전면 해제되었고 25도 내외의 선선한 날씨가 이어진다는 뉴스에 반갑기까지 했다.


체감온도는 며칠 전부터 조석으로 선선하다 느꼈었다. 더위가 한풀 꺾일 거라고 기대했던 처서도 올에는 절기의 의미 없이 무심하게 넘어가더니 보이지 않던 무더위의 터널이 이제야 끝이 나는 모양이다.


문제는 집중호우다. 장마없이 지나간다 싶더니 시도때도 없이 수시로 내리는 집중호우에 지인들은 “집 괜찮아?”하고 묻는 것이 인사였다. 밤새 무섭게 쏟아지는 폭우와 천둥 번개까지 동반해서 밤잠을 설치기도 했으니 전에 없던 기상 이변이란다.

모악미술관 뒤 지압로

이러한 기상 이변 속에서도 빠지지 않고 매일 찾았던 곳이 모악산이다. 물론 정상까지는 엄두도 못낼 일이다. 그러나 점차 늘려서 요즘에는 대원사까지 올라가고 있다. 그야말로 숨 쉬듯이 그리고 밥 먹듯이 운동하고 있다. 내 몸에 맞게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처음에는 도립미술관 뒤 지압로를 왕복 5번 내외 컨디션과 몸 상태에 따라 조절했었다. 그런데 남편이 동참하면서 방향을 대원사로 돌렸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부러 늦은 오후에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는 어둑발이 내린 시각임에도 많은 분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올라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모악산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분들은 아예 머리에 써치라이트를 쓰고 올라가는 모습들도 보였다.


집 가까이에 모악산이 있으니 노후 고향에 내려와 살기를 너무나 잘 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물소리, 새소리, 자연의 소리들을 만끽하면서 운동할 수 있으니 천혜의 혜택을 받고 있는 셈이다.


고향에 내려와 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으나 계획에는 없었다. 수지에서 분양받은 힐스테이트에서 마지막 노후를 보내려 했던 이유가 아파트 뒷문만 나가면 광교산이니 공기 좋은 곳에서 건강 챙기며 살아가면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 그대로 계획이었을 뿐 계획에도 없는 고향으로 내려와 살게 된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살면서 절감한다.


방학 때 부모님이 계시는 전주에 내려올 때마다 전주 톨게이트를 지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었다. 전주의 하늘이 좋았고 전주의 공기가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막연하게 전주에 내려와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는데 계획이 아닌 생각대로 이루어진 셈이다.


올에는 교육청 보결교사로 들어가서 전주 시내의 전 학교를 누비며 다니고 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는데 내리쬐는 눈부신 햇살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내 고향 전주 시내의 전 학교를 이렇게 누비고 다니게 될 줄 내 어찌 알았을까. 전혀 짐작도 못한 감격스러운 일이다. 우리 아이들과 행복했던 현직 때의 감동을 전주에서 그대로 재현하며 살고 있으니 그저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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