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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왜 거기 있는 거야?

사라진 USB

by 이옥임

"야, 네가 왜 거기 있는 거야~~!"


정말 답답한 심정에 울음 폭발 직전 발견한 USB를 집어들고 만감이 들었다. 반갑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내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하고 퇴직하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남편이 왜 그렇게 나를 향해 아픈 화살을 쏘아댔는지 절감하는 순간 희망의 빛줄기가 내 뇌리를 스쳤다. USB를 찾느라 생각지 않은 시간들이 소요되었지만

'와, 이렇게 해서 또 하나의 글감이 생겼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 또한 좋은 경험이었다는 위로감에 감사하기까지 했다.


교육청 보결교사로 6학년 마지막 수업 5,6교시에 USB를 교실에 그대로 꽂아둔 채 왔다는 것을 어젯밤에야 알았다. 선배에게 수업자료를 보내주기 위해서 가방에 들어있는 USB를 꺼내려는데 안주머니에 당연히 들어있어야 할 USB가 없다.


혹 다른 곳에 들어있나 싶어 가방 속의 물건들을 모두 꺼낸 후 가방을 엎기까지 했음에도 나와야 할 USB가 없으니 천상 학교에 가서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잠자리에 들었었다.


오늘은 배정받은 수업이 없어서 집안일을 하려고 계획을 세웠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 않은 또 다른 계획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이른 아침 5시에 일어나 남편 부산 출장길 아침식사로 야채김말이와 과일을 챙겨서 6시에 나가는 남편을 배웅하고 들어왔다. 그리고 6시 40분 모닝콜을 마치고 서둘러 USB를 가지러 가기 위해 학교로 출발했다.


남편의 아침식사

교실에 들어가니 본체에 그대로 꽂혀있는 USB를 보고 반가웠다. 내가 마지막으로 교실정리를 하고 나왔으니 그대로 꽂혀있는 건 당연하다.


내일은 거리가 있는 학교 출근이니 집에 오는 길에 주유를 하고 즐겁게 집에 도착, 차에서 내렸는데 홍시 감들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그동안 남편이 주위를 둘러보고 주워다 준 감들을 먹기만 했지 떨어져 있는 감들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감을 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핸드폰과 차키, USB를 든 채 감을 주우니 감의 크기가 커서 두어 개 밖에 집을 수가 없다. 집에 잠시 들어가 바구니를 가지고 나오면 좋았을 테지만 번거롭다는 생각에 줍는 대로 주워들고 집에 들어왔는데 있어야 할 USB가 보이지 않는다.

USB 분실의 원인 홍시감

'차에서 챙기지 않았나.'라는 생각에 차 안을 둘러봤지만 없다. 운전석과 운전석 옆 의자를 밀치고 당겨서 확인하고 감을 줍기 위해 거친 경로를 확인했음에도 보여야 할 USB가 보이지 않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어딘가 있을 거야.'라는 희망을 가지고 다시 차 안, 감이 떨어져 있던 길가의 낙엽들도 헤쳐보고 현관 앞 잔디와 분꽃들을 들춰가며 총 서너 번 확인했음에도 보이지 않으니 급기야 좌절감이 들기 시작했다. 다른 USB들이라면 하나 쯤 없어져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나 학교 USB는 인증서부터 시작해서 보결교사, 인성교육 시 사용할 많은 수업 자료들과 개인 자료들이 누적해서 들어있는데 없어지면 안될 소중한 USB다.

잃어버리면 안되는 USB

USB를 찾거든 복사본을 만들어 두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집에 오는 길에 들른 주유소에 전화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USB를 만져보고 주유한다고 나오면서 밖에 떨어졌을까 싶어 주유소에 전화를 하고 있는데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았던 USB가 전혀 생각지 않은 주차장 한 가운데에 떨어져서 반짝 빛나고 있는 게 아닌가. 거리가 꽤 있음에도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주차장 한 가운데 떨어져 있는 USB

살면서 이렇듯 좌절하고 낙심하게 되는 일들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그대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음을 오늘의 경험을 통해서 새삼 절감했다.


출퇴근과 모악산 운동 오가느라 하루에 두어번 우리집 진입로 언덕을 오르내리며 감나무 밑 쌓인 낙엽들과 떨어진 감들을 보면서 '치워야지' 마음만 먹고 있었는데 사라진 USB 덕분에 과제를 해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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