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 회장

편지

by 이옥임

마지막 수업 후 인사를 끝내고 회장이 앞으로 나와 부끄러워하며 건넨 편지와 초콜릿 2개를 내 손에 건네준다.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애들 없을 때 보셔요~~"하고 나가더니 문 밖에서 큰소리로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하고 인사를 한다. 집에 갈 때면 문 밖에서 큰소리로 인사하던 회장이었다.


교실 정리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 초콜릿 하나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회장이 건네준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처음 만났던 날 점심시간에 교실에 들어와서 대뜸 진수에게 무섭게 소리지르며 윽박지르던 아이였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상황만 잠자코 지켜볼 따름이었다. 다만 회장의 언성이 너무나 높아서 소리를 낮추자고 종용했었다.

후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반 급우들이 그동안 참다참다 결국 뿔이 난 상황을 회장이 총대를 메고 진수에게 따지고 물었던 셈이다.


첫날 함께 생활하면서 회장의 역할이 버겁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후 자기활동 시간이나 미술시간에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시끄럽다 싶으면 회장이 나와서


"지금부터 시끄럽게 하는 애들은 칠판에 이름 적을 거야. 지금부터 시작!"이라거나 친구들과의 다툼이 있을 때는 중재 역할을 하는데 회장의 말을 순순히 듣는 애들 같았으면 아예 처음부터 다툼도 없었다.


첫 날, 일과를 마치고 회장을 불렀다.


"선생님이 계시는 동안은 선생님이 친구들 관리할 테니까 나와서 이름을 적거나 친구들 중재하느라 힘들게 하지 않아도 돼. 우리 회장도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잖아. 선생님이 부탁할 때 그 때만 도와주면 돼. 어때?"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회장 자신도 모르게 습관이 되었는지 친구들 다툼에 반사적으로 다가가서 훈계하듯 가르치고 교실이 조금이라도 소란스럽다 싶으면 정신없는 활동 중에도 여지없이

"얘들아, 조용히 해!"하고 소리친다.


목소리가 크지 않으면 회장도 못할 분위기다. 첫날 선생님이 앞에 계심에도 진수를 무섭게 다그치고 책상 다리를 반복해서 차던 회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이틀째 되는 날 5교시에 회장이 할 일을 다했다며 돌아다니는 모습에 불러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이(가명)야, 선생님이 보니까 영이가 회장 역할을 너무나 잘 하고 있어. 그런데 선생님이 생각할 때 우리 영이가 조금 힘들 것 같다. 영이가 힘들면 안되거든. 우리반의 회장이 먼저 즐겁고 행복해야 반 아이들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 조금 시끄러우면 어때? 괜찮아. 선생님이 계실 때는 선생님이 알아서 하시도록 맡기고 회장은 네 할 일에 집중해도 돼. 친구들 챙기느라 언성도 높아지고 스트레스도 받고 네 할 일도 못하고 ...... 우리 영이가 힘들게 안 그랬으면 좋겠어. 친구들도 도움을 요청할 때 가서 도와주면 돼."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얼굴이 굳어서 예민하게 반응하던 회장이 그 다음날부터는 편안해진 모습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집에 갈 때마다 앞문 밖에서 큰소리로 인사를 하며 돌아가곤 했었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도 코드가 맞아야 치료 효과가 높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만난 지 불과 닷새 밖에 안되었음에도 회장인 영이는 나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했던 것을 보면 코드가 잘 맞았던 모양이다. 마지막 날 등교해서 아침활동을 하다 말고 회장인 영이가 불현듯 질문을 한다.


"선생님, 오늘이 마지막이네요. 다음 주는 어느 학교로 가세요? 우리 5학년 때 담임 해주시면 안돼요? 담임 해주세요!"


그러잖아도 큰 목소리가 교실의 고요한 정적을 깨뜨린다. 회장의 난데없는 말에 몇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네~~ 선생님, 5학년 때 담임 해주세요!"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나 역시 우리 아이들 5학년 담임을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안되는지 설명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이해할 리 만무하다. 그래서 내년에도 기회가 되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만 했다.


가능하다면 현직에서 우리 아이들과 교감하며 호흡을 맞추었던 것처럼 지금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중학시절 어느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난다.


"내가 지금은 주름이 이렇게 자글자글해도 내 마음은 그대로 청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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