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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옥임 Apr 26. 2022

민수 어머니

선생님, 1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정말 큰 은혜만 받은 것 같아서 항상 감사해하며 살고 있습니다선생님의 도움 없이는 우리 아이가 학교 적응이 불가능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감사한 마음입니다반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도움 또한 잊지 않겠습니다.”


민수 어머니가 건네준 선물 안에 들어 있는 편지다종업식을 마치고 애들을 하교 시킨 후 졸업식 담당 업무를 점검하기 위해 강당에 올라갔는데 민수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나를 보기 위해 민수와 함께 왔는데 교실에 안 계신다며 어디 계시느냐고그래서 졸업식 준비로 강당에 올라와 있는데 속히 내려가겠다며 서둘러 내려왔다.


민수 어머니의 활짝 웃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 얼굴인지 처음으로 느꼈다그동안 민수 어머니의 어둡고 우울한 모습으로 인해 늘 안타까웠었다양손에 2개의 쇼핑백을 나에게 건네주시며


선생님, 1년 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우리 민수가 학교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 덕분입니다건강하세요.”


물론 안 된다며 안 받겠다고 극구 사양했으나 그냥 물러설 민수엄마였다면 애초에 준비해오지 않을 분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선생님선생님과 헤어지는 마당에 진심으로 감사해서 드리는 선물이예요부담 없이 받아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며칠 전에는 반 급우들에게 1년 동안 민수를 도와주어서 고맙다며 떡집에 특별히 맛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말씀과 함께 찰떡을 해가지고 오셨었다우리 반 애들은 모두 의아해했지만 이내 좋아하고 반겨하며 1개씩 집어 들곤

집에 가서 엄마하고 나누어 먹어야지” 하고 가방에 즐겁게 넣는 모습들이었다떡을 받은 학부형들도 의아해 하셨단다민수 엄마가 무슨 일이냐고.


민수 어머니의 마음이 열리고 변화되었다는 것은 우리 민수를 위해서 감사할 일이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두 남 탓이었고 자신의 문제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 안에 갇혀서 우울해하고 힘들어 함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언짢게 하고 괴롭게 했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는 추운 겨울 유치원 문 앞에 장시간 민수와 함께 쪼그리고 앉아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민수 손을 붙잡고 집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다반사였단다담임선생님은 기본이고 교감 선생님까지 나가서 걱정을 하며 만류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는 우리 민수 의견이 중요해요민수가 결정하는 대로 따를 거예요.”라며 민수가 결정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급기야는 유치원에 들어가지 못하고 집으로 향하는 일이 많았었다며 옆에서 지켜보던 안전지킴이 선생님도 늘 민수 어머니가 안타까웠다고 한다.


1학년이 되어서 우리 반이 되었고 훤칠한 키에 잘 생긴 민수는 다른 애들과 달리 늦게까지 엄마 손을 붙잡고 교실 앞까지 왔었다어떻게든 고맙게 잘 다닌다 싶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점점 늦어지기 시작하면서 어느 때는 4교시 마칠 무렵에 와서 잘 먹지 않는 급식만 먹고 가는 일도 생기기 시작했다그러나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집에 돌아갈 때는 의기양양하게 가방을 둘러메고 큰 목소리로


선생님안녕히 계세요!”라며 인사를 빠뜨리지 않았다우리 민수를 위해서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민수를 불러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


“ 민수야왜 아침에 늦어?”

엄마가 늦게 일어났어요

엄마가 아침밥을 안 주셨어요.”

엄마가 아팠어요.”

엄마가 아침에 샤워를 늦게까지 했어요.”


이유 모두가 하나같이 엄마 탓으로 돌리는 이 상황들이 이해될 수 있는 것은 민수 등교는 늘 엄마와 함께였기 때문이다그래서 민수에게 약속을 했다.

민수야, 선생님은 이제 우리 민수 혼자 학교에 오면 좋을 것 같은데 어때? 집이 바로 학교 옆이잖아.. ”

민수의 눈이 반짝이며 커진다..

민수야이젠 발표도 잘 하고 공부도 잘 하잖아그러니까 엄마 힘들지 않게 학교도 혼자 와야 한다고 생각해엄마 몸도 자주 아프시다며. ”


손가락을 걸어 약속을 하고 도장까지 찍었으나 이후로도 1교시 이후에 가방을 메고 들어오는 일이 잦았고 친구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교실에 아무렇지 않은 듯 문을 열고 느즈막히 들어오는 우리 민수의 맘은 어떨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엄마에게 전화와 문자로 부탁을 드렸지만 그 때만 잠시 뿐 시간이 지나면 늦는 것은 매한가지고 결석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전화와 면담을 통해 엄마와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싶어서 아빠에게 상담요청을 했다.


예상한대로 아빠도 엄마와는 해결 방법이 없어서 포기 상태라는 것을 어렵게 표현하셨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민수라고 했다더욱이 외동아들인데 소중한 아이를 위해서 아빠가 포기하면 안 된다며 엄마의 현 상태도 아빠가 보살펴야 할 상황이라고.


민수가 적기에 습득해야 할 것들을 습득하지 못해서 친구들과의 의사소통이 어렵고 학습활동이 전혀 안 된다고교실에서도 운동장에서도 혼자서 즐거워하는 표정이 나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아느냐고내 아이가 많은 아이들 속에서 혼자 배회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셨느냐고.


열심히 사시는 아버님께는 죄송하지만 우리 민수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아버님께서 포기하고 방관해 온 탓에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민수의 사회성이 많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하셔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소중한 민수를 위해 민수 아버님께 과제를 드리겠다고 했다.


민수 아버님민수를 위해서 먼저 민수 어머니를 돌보시고 챙기셔야 합니다많이 우울해하고 힘들어 하시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파요엄마의 영향이 소중한 민수에게 간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바쁘시더라도 민수 어머니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시고 가족 간의 대화를 시도하셔야 합니다민수가 친구들과 말하는 방법을 몰라서 어울리지 못하고 있어요. 오로지 민수만을 생각하시고 힘드시더라도 꼭 과제 이행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민수 아빠의 반응이 매우 긍정적이고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돌아가신 후 민수의 표정과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혼자서도 학교에 왔으며 학습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모습이 대견스럽기만 했다물론 민수를 위해서 급우들이 많이 참아주고 기다려주며 도와준 공도 배제할 수 없다.


민수 어머니의 앞집과의 갈등반 학부형들과의 갈등앞 뒤 돌아보지 않고 궁금하거나 문제가 된다고 생각되는 일에 즉흥적으로 예제 전화해서 상대방을 언짢게 하는 일들로 1년 동안 많은 파문이 있었으나 다행히 모두 잘 이겨내셨다.


선생님제가 많이 달라졌어요그동안 제가 문제였다는 것을 전혀 몰랐거든요우리 민수도 학교에 잘 적응하게 해주시고 우리 가정을 위해 애써 주신 덕분에 저도 이렇게 좋아졌으니 걱정 마세요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양손의 쇼핑백을 나에게 건네주시며 밝은 모습으로 말한 후 민수와 손을 잡고 나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감사했다. 나는 곧바로 민수 아버님께 축하드린다는 문자를 보내드렸다.

민수 아버님축하드려요민수 어머님께서 금방 다녀가셨는데 민수 어머니가 그렇게 예쁘시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아버님께서 그동안 애쓴 보람이 우리 민수 어머님 얼굴에서 보였습니다부디 행복하시길 빌어요.”

선생님그동안 우리 가정을 위해 마음 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민수 엄마가 처음에는 예뻤답니다.ㅎㅎ 앞으로도 우리 민수를 위해서 많이 노력하겠습니다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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