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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옥임 Apr 26. 2022

길수는 벙어리예요

3학년을 맡으면서 만난 아이였다하루 종일 말을 하거나 웃는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던 길수수업은 물론 모든 학급활동에 참여하는 일은 금기처럼 되어버린 아이 같았다다방면으로 말을 시켜보려고 시도했지만꽉 닫혀버린 마음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고놀란 토끼 눈 마냥 늘 겁에 질린 모습으로 경계하는 눈빛과 굳어있는 표정은 날 매우 안타깝게 했다급우들과 어울리면 함께 말도 하고 웃기도 할 줄 알았지만 급우들조차


"선생님길수는 벙어리예요."한다하니 필시 무슨 이유가 있음이 분명했다.


혹시 길수에 대해 참고가 될까 싶어서 전 학년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여쭈어 보았지만 역시 1년 동안 말하는 모습은 물론 말소리조차 들어보지 못하셨다며,

"애들이 벙어리라는데정말 벙어리 아니야 ?"하고 오히려 되물어 오셨다.


그러던 어느 날결석을 않던 길수가 무슨 일인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급우들에게 알아보았으나 그의 결석에 대해 아는 아이들이 아무도 없었다집으로 전화를 해보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다음 날학교에 나온 길수를 불러서 연유를 물었다.

"길수야어제 왜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

"……"


반복해서 질문을 했으나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학기초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입술을 움직여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모습이었으나힐끔힐끔 친구들을 바라보며 눈치를 살피는 일은 똑같았다이 방법으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던 끝에 수업시간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한글 해독 여부도 모르는 상황이니 이번 기회에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수야어제 왜 학교에 나오지 못했는지 글자로 써 볼래?"

길수의 반응은 의외로 눈이 반짝이며 밝아지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길수가 글자를 아는 모양이구나그래선생님이 종이와 연필을 줄 테니까 써 봐."

연필을 들고 선뜻 쓰기 시작한 길수는 학교에 나오지 못한 이유를 단숨에 써내려 갔다.


돈을 안 가주고 와서


글쎄 길수가 돈을 안 가지고 와서 학교에 오지 못했다고 쓰고 있는 게 아닌가적잖이 충격적이고도 감격적이었다사실길수가 글자를 알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었다그 동안 수업시간에 교과서는 물론 준비물조차 꺼내놓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고일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앉아만 있었기 때문이다.


"야길수 장하구나잘 썼어돈을 안 가지고 와서 학교에 못나왔구나?"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후에 엄마한테 들어 알고 보니 미리 사둔 차표가 떨어진 것을 모르고 아빠 엄마는 이른 아침에 일을 나가고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그만 학교에 결석하고 말았다고 한다..


또박또박 바른 글씨체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길수에 대한 모든 의문점이 풀려버렸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다시간이 나는 대로 길수를 불러서 손을 잡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심리적 부담감을 없애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시도했지만 결국 말소리 한 번 듣지 못하고 1학기를 마쳐야 했다.


2학기가 시작되고 학교 사정에 의해 학급담임이 일부 바뀌면서 특수학급을 맡게 되자 길수와 함께 있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길수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특수학급에 와서는 말을 잘 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책을 잘 읽는다는 점반면에 수학은 아무 것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길수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방향을 정할 수가 있었다그리고 남은 학기 동안 원적학급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의사표현에 중점을 두고 새 담임선생과 연계지도를 하기 위해서 도움을 청했다먼저담임선생이 길수를 이해할 수 있도록 특수학급에서의 생활모습을 수시로 알려주고담임선생의 특별한 관심과 급우들의 협조를 부탁한 후에 길수의 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서로 알려주기로 약속을 했다.


드디어 길수가 교실에서 말을 조금씩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시작만 하면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조금씩 느끼게 해주었다작년 겨울방학이 시작될 무렵길수의 담임 선생이 환한 모습으로 찾아왔다.


"선생님이젠 길수가 말도 잘 하고 표정도 매우 밝아졌어요얼마나 잘 웃는지 몰라요."


감사할 일이었다교실에서의 의사표현에 성공을 거둔 길수는 4학년이 되어서 수학적 사고력을 신장시키는 데 목표를 두었다수 개념이 전혀 형성되지 않아서 학습장애가 되고 있는 길수는 때로 사고력이 정지된 아이마냥 그 어떤 구체물로도 설명이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서서히 잘 극복해 나가고 있다자칫 서두르거나 욕심을 내서 길수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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