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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옥임 Apr 26. 2022

놀림받는 아이

불가능은 없다라는 말을 신념처럼 여기고 특수학급을 담임해서 만난 아이 성배한글 미해득과 수 개념이 전혀 형성되지 않아 수업시간은 물론 학급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밖으로만 나돌던 성배는 발육부진으로 신체발달 장애까지 있는 듯 눈에 띄는 왜소한 키와 작은 몸집그리고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지워질 새가 없는 늘 얼룩진 모습으로 들어오는 아이였다.


3학년 2학기가 되도록 알고 있는 글자라곤 와 겨우 제 이름을 쓸 정도였으며수 개념 역시 0에서 9까지는 쓰고 읽을 줄 알지만 기초적인 가감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였고 잦은 군것질로 돈에 대한 개념은 우수하였으나 숫자개념과 연계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였다이처럼 군것질에 익숙한 일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니 선배들이나 급우들의 놀림은 차치하고라도 1학년 후배들의 놀림에도 방어하거나 대항할 의욕마저 보이지 않고 놀리면 놀리는 대로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아가며 울고 다니던 아이였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인의 공격에 대처하는 것이 본능이지만 안타깝게도 성배는 아무런 대항의지 없이 자신을 방치해두고 있었다그러나 더 이상은 그 누구에게도 놀림을 받거나 맞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성배 자신이 알도록 해야 했다그래서 자신의 모습을 새로이 인식시키고 매사에 자신감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한글해득에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먼저학교생활에서 알아야 할 언어들을 선별해서 지도하기 시작했다시간표에 따라 교과서를 꺼내 놓을 수 있도록 교과목 명을 익혔고교내의 특별실 명을 익혀서 혼자서도 찾아갈 수 있도록 했으며가까운 친구들의 이름을 익히기도 했다수없이 읽고 쓰기를 반복한 후에큰 기대를 걸고 질문할 때마다 전혀 엉뚱한 대답으로 동문서답하거나 횡설수설 할 때에는 많은 갈등을 겪어야 했고 하는 일에 회의가 일기도 했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과 달리 쉽게 각인이 되지 않는 성배 자신이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사실과 아울러 순간 순간의 내 이기심이 성배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를 깨달아야 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노력해 온 결과, 3학년이 끝날 무렵에는 1학년 읽기 책을 모두 읽을 수 있어서 2학년 읽기 책에 들어갔다.
어디 그뿐이랴수학은 받아 올림과 내림이 있는 세 자리 수의 가감산까지 가능하게 되었으니 성배 스스로의 힘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셈이다.


4학년이 된 지금은 조금만 조언해주어도 무슨 내용인지 금새 알아듣고 주어진 문제를 곧잘 해결해 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년 12 월 19 일 금요일 맑음

성배가 기특하고 고맙다책을 읽기 시작한다비록 1-1학기 읽기 책을 읽고 있긴 하나성배로서는 획기적인 일이다올 9월에 만났을 때만 해도 책읽기는커녕 글자를 전혀 모른 상태였었다그러나 성배의 가능성을 믿었다다른 아이들보다 진전이 훨씬 느리고 사고력이나 모든 능력 면에서 떨어지는 아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성배는 반드시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그래서 꾸준히 해온 결과 지금 1-1읽기 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이제야 글자에 갓 눈을 뜨기 시작했고 초보단계에 불과하나성배의 가능성을 믿기에 더디고 끝없이 반복해야 하는 안타까움이 있기는 해도 성배가 지니고 있는 남다른 특성쯤으로 여기고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하고 있다언젠가는 저 혼자의 힘으로 우뚝 설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제법 여유도 생겨서 잘 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큰 소리로 힘을 주어가며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는 성배의 모습을 보면서 나 혼자 웃었다.

"야 성배 잘 읽는다선생님이 성배도 잘 할 수 있다고 했잖아그래 너는 잘 할 수 있어."


칭찬을 해주고 스티커를 읽기란에 붙이도록 하자 활짝 웃으며 좋아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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