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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옥임 Apr 26. 2022

미라네 집

어젯밤 몇 시쯤이었을까문득 잠에서 깨어 몸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추워서였는지 분간 못할 상태에 있었다이불을 끌어올려 목까지 덮었는데도 한동안 한기가 들어 묘한 기분에 휩싸여 있는데 아래층이 소란스럽다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코푸는 소리물 끼얹는 소리왔다 갔다 하는 발걸음 소리들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서 바로 밑층에 사는 부부가 갈비집 일을 마치고 이제야 들어왔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것은 늘상 밤 깊은 시각에 들어오는 밑층의 일상생활이 아니었다아니나 다를까잠시 후에 난데없는 찬송가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기 시작한다다들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각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기어코 202호 아저씨가 돌아가셨구나.’하는 생각이 번뜩 뇌리를 스치면서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숨 가쁜 소리로 그이를 불러 깨웠다.

여보!”


그러나 그이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당연하다잠이 들면 코를 베어가도 모를 만큼 깊이 잠이 드는 그이를 보니 굳이 깨워야 할 이유가 없었다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엄습해오는 두려움으로 꼼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귀를 모았지만 나이 드신 분들의 구슬픈 찬송가 소리만 간간이 이어지고 있을 뿐 그 외 별다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바깥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서 용기를 내어 베란다로 나갔으나 앞 동 창문을 통해서 우리 동의 알 수 없는 어느 한 집의 불빛만 환히 반사되어 비치고 있을 뿐 아무런 동요가 없는 것으로 보아서 내 짐작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러나 이미 깨어버린 잠이 쉬이 올 리 만무하다자꾸만 2층의 미라엄마가 눈에 아른거렸다미라 아빠가 돌아가신 게 사실이라면 어린애들과 미라 엄마는 어쩌나 하는 안타까움에 결코 남일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친정의 장남 울 남동생도 몇 해 전 교통사고로 어린 아들 둘을 남겨두고 가지 않았던가.


한참을 뒤척이다가 얼핏 잠이 들었는데 생시 같은 꿈을 꾸었다미라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주차장에 천막을 치고 초상을 치루는 장면이었다조문을 가서 미라 엄마의 손을 잡고

어떻게 해요불편하다며 사 오라시던 의자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셔서...”


참으로 기이한 꿈이었다사실 어제 오후에 주차장에서 핼쓱해진 미라 엄마를 만나 어디에 가느냐고 묻자

미라 아빠가 누워있기가 불편하다 해서 의자를 사러 가는 길이예요.”했었다.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서 바쁘게 준비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린다문을 열어보니 미라 엄마다.

저기요우리 애기 아빠가 어젯밤 10시 50분에 갔어요.”하는 소리에 덥썩 미라 엄마의 손을 부여잡았다.


머리는 헝클어진 채 제 모습이 아닌 것으로 보아서 밤새 숨죽여 울며 힘들어 했을 게 틀림없다.

저런 어떻게 해요?”


기가 막혀서 반사적으로 나온 내 말에

탈상은 내일 새벽 6시에 하려구요아들이 없어서 화장을 시키기로 했어요.”


그동안 암 투병 중이었던 남편을 간호하느라 눈에 띄게 마른 모습으로 힘겹게 토해내고 있었다물론 예고된 일이었고 나름대로 준비해온 일이었을 테지만 막상 큰일을 당하고 보니 감당하기가 힘들 것은 당연지사다.


우리 미라를 결석시켜야 할 것 같아서 선생님께 말씀드리러 왔어요.”


미라 담임인 그이한테 말씀드리기 위해서 부러 올라왔다니 굳이 힘들게 올라오지 않아도 될 일이었지만 그 경황에도 아이를 챙기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퇴근하고 돌아오니 주차장에 들어설 수도 없게 천막을 쳐놓고 손님을 접대하고 있는 장면이 매우 낯이 익은 게 어젯밤 꿈속에서와 똑같았다조문을 갔는데 어젯밤 9시에 배달된 의자에 1번 앉아보고 돌아가셨다며 눈을 감을 때까지

미안해애들 잘 키워줘.”했다니 당시 고인의 심정이 어땠는지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감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아울러 미라 엄마와 어린 두 딸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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