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잘못 잔 듯 그저께 아침부터 목덜미와 오른쪽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금세 괜찮아질 줄 알았으나 도저히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서 남편에게 맛사지를 해달라고 부탁하자 남편은 단박에 부앙을 뜨자 한다. 혼자서도 곧잘 부앙을 뜨는 남편은
"그래, 부앙을 뜨자. 부앙 뜨면 금방 괜찮아져."했지만 목 둘레에 벌겋게 부앙 흉터가 생길 것을 염려한 나는 맛사지를 받고 싶다고 했다.
양 어깨와 등, 양 팔의 맛사지를 받으면서 몸살기가 있으니 자칫 일어나지 못하는 근육통까지 생길 것 같아 그만하라 해놓고 타이레놀부터 챙겨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몇 시쯤일까? 예제서 강아지들이 숨막히게 짖어대는 소리 가운데 살짝 현관문 여닫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남편이 급하게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다급하게
"가!"라는 남편의 외침이 반복해서 들려온다. 짐작에
'멧돼지가 나타났구나.'생각했다.
남편이 나간 뒤부터 강아지 짖는 소리도 아니고 처음으로 듣는 낯선 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멧돼지 새끼일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짧게 끊어지는 소리로 앳된 소리였다.
불을 환하게 켜거나 사람이 나타나면 멧돼지는 도망간다고 했었다. 외등이 켜지고 사람이 나타나자 똥줄 빠지게 도망갔을 멧돼지들 사이에 남은 어린 멧돼지가 뒤따라가면서 불안하고 급한 마음에 내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정작 남편은 내가 들었던 소리를 못 들었으며 나가보니 이미 다 도망가고 없더라고.... 고구마 밭을 마구 헤쳐놓은 자리만 휑하니 남아 있었단다.
시간을 보니 10시 46분이다. 그동안 멧돼지들이 나타난 시각이 새벽이 아니라 이 시간대였을까? 남편은 분명히 새벽이라고 했었는데... 그래서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야겠다며 남편은 이른 시각에 잠자리에 든 적도 있었다. 물론 항상 같은 시간대는 아니었으리라. 오늘은 녀석들이 배가 고파서 일찍 내려왔는지도 모른다.
풀어놓은 강아지들도 정작 멧돼지가 나타났을 때에는 꼼짝을 못하고 있더란다.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먼발치에서 짖어대기만 할 뿐... 그러니 이 녀석들을 어디에 쓸까? 하긴 바둑이가 고라니에게는 달려들어 잡아왔다고 했었다. 그것도 새끼 고라니를....
행여라도 잡힐세라 소리를 내며 절박하게 뒤따라갔을 멧돼지 새끼를 생각하니
'그래, 우리는 못 먹어도 너희라도 먹었으니 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2시 반쯤, 요란하게 천둥과 번개 치는 소리에 다시 잠에서 깼다. "쾅쾅" 소리와 함께 번쩍이는 불빛, 쏟아지는 빗소리가 얼마나 요란한지 마치 밖에 쓰러져서 꼼짝 못하고 있는 사람마냥 이대로 번개에 맞는 것은 아닌가 순간 불안해졌고 또 다시 밖에 나간 남편이 염려가 되었지만 꼼짝을 하지 못했다.
"여보, 왜 위험할 때 나가는 거야. 다른 것 신경쓰지 말고 빨리 들어와."라고 말리고 싶었으나 마음 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밤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르게 땅만 촉촉히 젖어있을 뿐 평온한 아침이다. 짓눌렀던 목과 어깨의 통증도 많이 좋아지고 몸도 가벼워져 있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