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며칠 사이에 가을이 문턱 안에 성큼 들어와 있음을 느낀다. 한낮 햇볕의 기운도 달라졌고 조석으로 느껴지는 체감 온도도 여실히 가을이다. 이제는 따뜻한 곳을 찾게 되고 긴 팔을 챙기게 된다.
점심을 먹고 교무실에 내려가서 커피를 타가지고 올라왔다. 약간 덥다 싶은 생각에 선풍기를 켰지만 몸 속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으로 꺼야만 했다. 무더운 한여름 요긴하게 사용했던 선풍기도 이젠 미련없이 제자리로 돌려 놓아야 할 모양이다.
여름 내내 잘 사용했다가 가을이 되어서 제자리로 돌아가고 돌려주어야 할 것들이 또 무엇이 있을까? 그래 이불이 있었구나. 어젯밤 침대 난방을 틀어놓고도 얇은 이불이 약간 춥다 했었다. 몸살 기운이 있어서였을까? 타이레놀 한 알 먹고 잠자리에 들어서 아침에 거뜬히 일어나긴 했지만 하나씩 가을 준비를 해야겠다. 미처 가을을 맞이할 새도 없이 찾아왔으니....
가을을 참 좋아했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은 나를 행복하게 했었고 내 맘을 흥분하게 하며 설레게 했었다. 온천지가 알록달록 아름답게 물든 그림들을 그려주었고 빨, 노, 주 등 물감들을 통째로 뿌려놓은 색감 좋은 그림들을 안겨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가을에 대한 감흥이 사라져 버렸다. 낙엽 떨어지는 벤취에 앉아 가을을 즐기던 여유가 사라져 버린 셈이다. 막내 여동생의 말대로 하늘과 먼 산 바라보고 멍 때리는 여유가 언제였던 듯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학창시절에는 먼 산 바라보고 멍 때리는 여유가 내 특기였었다. 낙엽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아파해 했었고 낙엽 뒹구는 모습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던 그 감성이 기인 시간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육순이 넘어 고향으로 돌아와서야 서서히 그리고 하나씩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잊고 살았던 공백 기간이 너무나 길어서 온전히 되찾는데도 그만큼 시간이 걸릴 거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서두르지 않는다. 못내 그리워만 했지 계획에도 없었던 고향으로 자연스럽게 되돌아왔듯 거스르지 않고 천천히 물 흐르는대로 모든 것을 내 맡기다보면 학창시절 감성과 여유가 나도 모르게 어느새 내 안에 돌아와 나를 흥분하게 하고 설레게 하리라. 물론 학창시절 순수했던 감성과는 다르겠지만....
올 여름 2번의 자가격리로 몸과 마음이 지치기도 했었고 남편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긴 장마, 멧돼지, 새들의 습격으로 인해 아로니아와 고구마 수확을 전혀 못하게 되었지만 이 또한 좋은 경험이 될 것이며 내년을 위한 밑거름이 되리라는 것을 믿는다. 아울러 그동안 무엇으로든 어려움을 겪고 힘들었던 많은 분들이 이 가을에는 모두 함께 행복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