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도 마리에의 정리가 필요한 날
설레는 물건을 선별해 지금 자신에게 진짜 소중한 것을 소중히 다루며 살자.(p.236)
곤도 마리에, 2020, 정리의 힘, 경기: 웅진지식하우스
곤도 마리에의 <정리의 힘>을 읽을 때가 내 삶에 정리가 필요했거나 내 삶에 정리를 시작하는 시점과 맞아 떨어졌다. 정리가 정말 어려운 사람이었고, 심지어 살면서 하는 집안일 가운데 가장 어렵고 도저히 갈피조차 잡을 수 없는 것이 정리하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이상 정리를 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간 정리가 어렵다고 느낀 것은 물건을 버리거나 나눌 생각 없이, 즉 집에서 내보내는 물건 없이, 집에 있는 물건을 잘 수납하고 정돈하는 수준에서 청소를 했기 때문이었다. 정리의 기본은 버리기라는 것을 몰랐다. 물건은 그저 두면, 언젠가 필요할 때가 생길 거고 그러면 다시 꺼내 쓰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물건을 쌓아두면 쌓아두었지 버리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니 집의 물건은 세월이 쌓이면서 점점 많아지고 베란다에 수납되는 물건이 많아지면서 방과 거실까지 물건의 양이 점점 많아졌다. 어떤 날은 소파가 소파인지 책장인지 구분이 안될 만큼 소파 위에 책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어서 사람이 앉기조차 불편했다. 아이들 장난감을 치우자 그 공간만큼 아이들 동화책을 들이고 말았다.
다행히 나는 물건을 사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실은 쇼핑을 싫어한다. 백화점 가는 것도 전혀 즐기지 않고, 딱 필요한 물건을 온라인으로 구매한다. 마트를 가도 뭘 이것저것 카트에 집어넣는 편은 아니다. 다만, 식품 장은 좀 지나치게 보는 면이 있지만, 살림하는 세월이 10년을 넘어가면서 음식이 썩어 나가지 않을 정도로 조절하는 법을 터득해가고 있다. 나는 꽉 찬 냉장고를 보면 속마저 답답하다. ‘저 식재료들을 도대체 언제 다 해 먹지?’하는 생각에 부담스러우니, 냉장고에 틈이 생기고, 어느 날 냉장고가 비었다 싶으면 마음이 다 개운하다. 그런 날은 냉동실 파먹기를 하며, 냉장고가 가벼워지는 기쁨을 느낀다. 사실 냉장고가 비어도 건조식품들이 냉동실이나 실온보관 어딘가에 박혀 있기 때문에 냉장고를 가득 채울 이유는 전혀 없다. 채소나 과일처럼 신선하게 먹어야 하는 것만 며칠 내로 먹을 정도만 사는 것이 좋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옷장과 책장, 그리고 서랍들.... 그런데 <정리의 힘>을 보면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실제로 내 책상과 문구 서랍 하나를 정리했는데, 금방 쓰레기봉투가 채워졌다. 그만큼 필요 없는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는 반증인데, 신기한 것은 물건을 버리면 물건이 적어지는 것이 아니라 쓸 물건이 더 생긴다는 것이다. 있는 줄도 몰랐던 나침반이나 각도기 같은 것이 서랍 어딘가에서 나오고, 그 서랍 안에 각도기를 넣을만한 주머니도 발견이 되는 식이다. 그렇게 물건마다 자리를 정해주고, 아주 작은 물건들은 주머니 안에 담아서 자리를 정해주니, 서랍을 열면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러니 전에는 없던 물건도 이제는 있는 셈이다. 버리고 나니 집에 물건이 늘어나는 마법을 보는 것 같다.
이 청소법은 곤도마리에가 제시한 정리하는 방법이다. 계속 정리하는 것이 아니고 단기간에 물건의 종류별로 정리를 해야 한다고 하니, 어떤 날은 의류를, 또 다른 날은 집에 있는 책을 싹 정리하는 식이다. 공간별로 정리를 하면 계속 같은 물건을 정리해야 하는 청소의 늪에 갇힐 수도 있다고 한다. 곤도 마리에에 의하면 정리는 단순한 것이다. 버릴지 말지, 그리고 버리지 않는 물건은 자리를 정해주는 것, 이 두 가지면 집이 더 이상 어질러지지 않는다.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얻는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이 부분에서 많이 놀랐다. 누구나 자기가 누구인지 자신에 대해서 더 잘 알기를 원하지 않는가? 곤도 마리에는 간결하게 말한다. 자기를 찾는 가장 빠른 길은 정리를 하는 것이라고... 자기에게 설레는 물건은 남기고 정리를 하면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된다고... 처음에는 좀 어리둥절한 말처럼 들렸는데, <정리의 힘> 한 권을 다 읽을 쯤에는 이 말도 일견 이해가 되었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아끼고 사랑하는 물건을 남기는 일이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데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그 방법을 물건에만 한정시킬 것이 아니고 시간을 쓰는 패턴에도 적용하여 생각하면, 정말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일을 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을 만나는 시간을 통해 우리는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자신다워지지 않는가? 물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 곤도마리에의 생각이 이해가 되었다. 수많은 작가들은 자기다운 필체를 갖기 위해, 자기다운 글을 쓰기 위해 애쓴다. 곤도마리에가 정리를 대하는 모습이 마치 작가들이 글을 쓸 때와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리에 지지리도 자신이 없던 나도 <정리의 힘>을 읽고 정리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좀 어질러진 집을 봐도 이전처럼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다. 내가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으니 그렇다. 가족들의 널브러진 물건들을 봐도 별로 화가 나지 않는다. 내 물건부터 정리를 하고 나면 수납할 충분한 공간이 생길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으니 그렇다. 깨끗하게 정리된 집, 불필요한 물건은 치우고, 내가 아끼는 물건들로 채워진 여유로운 공간을 상상한다.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소중히 여기려한다. 실제로 집이 점점 깨끗해지고 있다.
커버 사진 출처 : Photo by Mathieu Perrie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