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염병기

누구라도 겪은, 혹은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by 소미소리


눌러대던 코로나가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난리 브루스를 치고 있다. 고삐 풀린 망아지는 본 적도 없는데 송아지가 껑충거리며 뛰는 것이 상상이 된다. 코로나를 잘 눌러 왔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 확산 속도가 매우 느린 나라였다. 국민들 역시 마스크를 꼭꼭 잘 착용하고 다녔고,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따랐다. 누군가 정부의 코로나 방역지침을 지키지 않는다 싶으며 지청구하기 십상이고 어떤 이들은 마스크를 끼지 않고 활보하는 이를 발견하면 여러 루트로 정부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가게들은 일찍 문을 닫았고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 아예 문을 열지 않는 일도 허다했다. 그러다가 그런 규제가 소용없는 것과 같은 시절이 되었다. 전 국민의 절반이 넘는 수가, 그리고 확진자를 헤아리는 수에 포함되지 않은 무증상자나, 검사 기피자까지 합하면 그 이상의 수가 코로나에 걸린 것은 확실하다.



Photo by Martin Sanchez on Unsplash

코로나는 코로나대로 확장세에 있던 때에 나는 복직을 했고, 코로나가 금세 수그러들 줄 알았다. 그런데 복직을 한지 이년이 넘어가는데도 코로나가 끝나기는커녕 활짝 핀 꽃처럼 만개했다. 그것은 우리집에도 쳐들어왔다. 같은 반에 확진자가 생긴 작은 아이가 걸렸고, 작은 아이가 증상이 있기 전에 아이와 음료수를 같이 마신 남편도 곧 이어 걸렸고, 아직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초등학생 큰 아이도 며칠을 버티다가는 옮았다. 2차까지 예방 접종을 한 나는 가족들 간호를 하면서도 괜찮거니 했다. 직장에서도 수두룩하게 확진자가 오가고 직원들 중에도 많이 걸리지만 괜찮았으니까. 심지어 약하게 언젠가 코로나가 지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몇 번인가 몸살이 오간 적이 있었으니까... 아직 접종을 하지 않은 초등학생 아이들은 코로나에 걸리니 열이 났다. 며칠을 앓아누운 아이들을 번갈아 돌보면서도 내가 걸릴 것은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고 검사 할 때마다 음성이었으니 안심이었다.


아버지 기일을 앞 둔 날이었다. 친정 식구들을 모두 만나니, 혹시나 해서 PCR검사를 받았다. 내가 걱정되서라기 보다는 동거가족들이 코로나에 걸린 상황이니 음성 확인서라도 있어야 스스로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코로나가 젊은 사람들에게서는 수월하게 지나간다지만, 어머니는 연세가 많으시고 호흡기 질환에 취약하시니까.... 예상 외로 결과는 ‘양성’ 이었다. ‘혹시나’가 여러 사람을 안전하게 지켰다. 양성이니 추도예배는 ‘화상예배’로 참여했다. 그때까지도 괜찮았다. 가정에서의 첫번째 추도예배이니 긴장도 했고, 아버지를 잘 기념하는 날이 되고 싶은 마음이 무엇보다 컸으니까... 다음 날부터는 증상이 시작되었다. 몰래 몸살처럼 지나간 것은 코로나가 아니고 몸살이었던 것이 확실하다. 코로나는 감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런 증상은 세상 처음이었다. 어지럼증을 동반한 피로감에 무척 심한 감기 증상까지...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녀석은 자신의 존재감을 나에게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냥 조용히 지나가는 녀석은 아니었다. 쉬어야 하니, 음식은 다 배달시켜 먹거나, 양가에서 만들어다 주시는 것을 먹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배달음식이든 즉석음식이든 가릴 것이 못되었다. 양가에서 만들어 주신 국이며 죽도 알뜰하게 먹었다. 그러고도 이 주 이상을 거의 부엌일을 못했다. 자가격리 기간이 끝난 다음날부터 직장에는 나갔지만, 집안일은 고사하고 콘플레이크 아침식사에 감사해야했다.


코로나는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아무리 꾹꾹 눌러도 결국은 자신의 존재감을 이 땅 곳곳에 드러냈다. 이제 자신의 존재를 다 드러냈으니, 드디어 수그러들 때가 온 건지도 모르겠다.


커버 사진 출처 : Photo by Markus Winkl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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