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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미소리 9시간전

맛없는 파김치로 만든, 맛있는 부침개

몸과 마음의 연결을 알려주는 자연식물식

얼마 전에 들어온 파김치를 아무도 먹지 않는다. 파가 너무 매워서 식탁에 내놓아도 쉽게 손이 가지 않으니 요리에나 조금씩 넣어서 먹고 있었는데, 이 맛없는 파김치를 전으로 부치니 아주 맛있게 변했다. 파가 매워서 그렇지 양념 자체는 맛있으니, 파김치를 가위로 송송 썰고 튀김가루(부침가루나 쌀가루, 밀가루 어떤 것이든…)를 넣어 반죽을 했다. 파김치의 양이 얼마 남지 않아서 대파를 두어 뿌리 썰어 넣어 양을 늘렸다. 앞뒤로 노릇하게 부치니 아주 맛있다. 파김치의 국물이 많이 들어가서 추가 간을 전혀 하지 않고 대파까지 넣었는데도 간이 딱 맞아서 별도로 양념간장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김치는 신기하게도 맛없으면 맛없는 대로 요리에 요긴하게 쓰인다.


원래는 냉장고에 알배기배추가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어서 배추채전을 하려고 했는데, 가족들의 주문으로 파김치전으로 변경했다. 알배기배추는 배춧잎 통째로 밀가루 옷을 입혀서 구워도 좋고, 채 썰어 반죽해서 큼지막하게 부쳐도 된다. 지난 주말에 지인이 준 당근도 많이 있으니 내일은 당근채전도 만들어야겠고…. 냉장고 속의 채소들이 아우성을 치는 것 같다. 어서 냉장고 속 밀린 채소에 손을 대어 먹음직한 음식으로 만들 게, 고민이다. 그러고 보니 냉장고 속에 주키니 호박도 한 개 있다. 내일은 당근과 호박을 넉넉히 채 썰어 넣고 부침개를 해 보아야겠다. 배추는 생각보다 오래 보관할 수 있고, 된장국을 끓이면 한 번에 많이 소비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자연식물식 136일째다. 오늘 먹은 음식 중에 자연식물식이 아닌 음식은 땅콩멸치볶음에 들어간 멸치, 베이글, 크림치즈, 그리고 부침개에 들어간 튀김가루 정도다. 부침개에 사용한 정제기름도 자연식물식 음식이 아니다. 100퍼센트 완벽한 자연식물식은 아니지만, 물김치와 채소반찬, 그리고 간식으로 먹는 다양한 과일로 자연식물식에 가까운 식사를 편안하게 유지하고 있다. 어제 만난 친구가 음식이 바뀌면 정말 마음도 바뀌느냐고 물어본다. 사실, 자연식물식을 하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변한다. 몸도 서서히 원래의 건강을 되찾아 가지만, 마음의 변화는 그보다 훨씬 빠르다. 자연식물식 초기부터 조급하게 서두르는 마음이 가라앉고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음식이 마음을 바꾸다니! 기대하지도 못한 변화를 누리며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어제 만난 친구는 늘 평온하다. 수십 년 동안 알아오면서 이 친구의 화가 나거나 다급한 모습을 본 것이 한 손에 꼽히지 않을 정도다. 그러고 보니, 친구도 거의 채식에 가까운 식사에 소식을 한다. 음식과 몸, 그리고 마음의 연결이라는 경이로움을 자연식물식을 하면서 수시로 느끼고 있다.


*표지 사진 : UnsplashIra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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