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김치를 하려고 배추 한 포기와 오이 한 묶음을 샀는데, 막상 배추를 보니 물김치가 아니라 가족들이 잘 먹는 배추겉절이를 담그고 싶어져서 겉절이를 담가 버렸다. 덩그러니 담겨진 오이를 무치려고 냉장고에서 꺼냈다. 오이겉절이에 잘 어울리는 양파 2개를 꺼내고 보니 냉장고에 파프리카가 3개나 있다. 파프리카는 물김치에 써도 좋지만, 가족들이 잘 먹는 오이무침에 먼저 사용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물김치 재료가 다 떨어져서 다시 장을 보아야겠다.
오이를 길게 4등분 한 뒤에 한입 크기로 잘랐다. 양파도 비슷한 크기로 자른 다음, 오이와 양파를 소금 한 큰 술에 절였다. 잠깐 절여지는 동안 아삭이고추 4개를 비슷한 크기로 자르고 파프리카도 한입 크기로 자른 다음, 채소를 다 섞어놓고 보니 색이 참 골고루 예쁘다. 여기에 고춧가루를 넣고 무치면 색감이 묻힐 것 같아서, 고춧가루는 넣지 않았다. 소금에 절인 오이와 양파를 씻어내지 않고 간장 3, 설탕 2, 식초 2큰술을 넣고 무쳤다. 오이겉절이에서 고춧가루만 뺐을 뿐인데, 맛의 차아기 확연하다. 역시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무치기를 잘 했다. 고춧가루를 넣은 채소 반찬은 이미 몇 가지나 있으니 아삭한 채소무침은 고춧가루 없이 담담하게 무쳐도 김치가 아쉽지는 않다. 먹다 보니 색이 다채롭고 예뻐서 눈이 즐겁고 아삭거리는 싱그러운 식감도 좋고 새콤달콤한 맛도 일품이다. 넉넉히 무쳐 두었으니 며칠 동안 샐러드를 대신할 자연식물식 반찬으로 족하다.
아이들 반찬은 추운 날 뜨끈하게 먹을 수 있는 돼지고기 고추장찌개를 했다. 적당히 묵은 김치가 있으면 김치찌개를 끓이지만, 신김치가 없으면 채소를 다양하게 넣고 고추장과 고춧가루, 설탕, 간장으로 추가 간을 해서 고추장찌개를 끓여도 좋다. 돼지고기 앞다리 한 근을 김치 국물(건더기는 넣지 않았다) 몇 국자와 함께 자박하게 끓이다가 돼지고기가 거의 익었을 때, 물 1리터를 넣고 끓였다. 양파도 넣고, 추가 간을 해서 끓이다가 마지막에 두부 한 모와 버섯 한 줌, 고추 약간을 넣고 한소끔 더 끓이면 완성이다. 물 대신 멸치다시마 육수를 사용하면 더 깊은 맛을 낼 수 있는데, 오늘은 깜빡하고 육수를 내지 못했다. 육수의 감칠 맛은 없었지만 양파와 버섯에서 채수가 우러나서 국물 맛이 괜찮다. 어제 끓여 둔 된장국이 아직 남아 있어서 나는 배추된장국을 먹고 찌개는 아이들만 주었다.
마음이 심란하거나 생각할 거리가 이것저것 있을 때에는 집에 앉아서 고민하는 것보다 밖에 나가서 걷는 게 훨씬 좋다. 둘레길을 한시간 반 정도 걸으니 추운 날씨에도 땀과 열이 나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무언가 이루고 싶은 소망이 생기면, 소망이 너무 강해서 마음이 경직되기 쉽다. 그럴 때에는 오히려 결과를 수용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갖는 게 훨씬 낫다. 강렬하게 소망하되, 결과에 대해서는 수용적인 마음을 가지려 하고 있다. 자연식물식 119일째다. 선물로 들어온 초콜릿케이크가 맛있어서 (자연식물식과 거리가 멀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한 조각 먹었고, 카페에서는 커피 대신 생과일를 주문했다. 아침에는 물김치와 고구마를 먹었고, 점심과 저녁도 된장국과 채소 반찬으로 자연식물식을 했다. 간식으로는 어머니가 주신 쑥개떡을 먹었다. 몸무게는 비슷하고, 전반적인 컨디션도 좋고, 눈도 편안해서 렌즈를 잘 착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