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찌르는 말과 행동이 있듯이, 마음을 찌르는 책이 있다. 크리스토프 앙드레는 집단치료에 탁월성을 가진 프랑스의 정신과 전문의다. 그의 책 <나라서 참 다행이다>라는 책이 내 손에 놓였다. 나는 책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확신, 우연히 마주친 책을 읽어도 좋은 영감과 만나는 행운을 누리는 사람이라는 확신에 의혹을 갖게 만든 책이다. 아이쿠, 이 책은 나를 마구 찔렀다. 찌르고 찌르고 또 날렵하게 찌르는데, 어떤 희망적인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이렇게 상처를 주다니, 어떤 식으로 내 마음을 다시 봉합하고 치료할 것인지 기대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이 책을 읽고 글을 한 편 쓴다는 다짐이 아니라면, 불편한 상처를 받으면서 끝까지 읽을 필요나 이유가 없고, 평안도 없으니 금세 집어치우고 말았을 것이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기를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리만 찾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다시 말해 자기가 있을 곳, 자기가 할 일, 살아 있다는 느낌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인간관계만 추구하면 족하다는 뜻이다. 정체성을 찾으려하지 말고 인간적이거나 물질적인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추구하라. (p.292)
크리스토프 앙드레, <나라서 참 다행이다>, 2010, 북폴리오
자학하는 건지 의심하면서, 그리고 이 책의 효용을 의심하면서 읽었다. 여느 심리학 에세이처럼 마음을 살살 달래고 부드럽게 하는 말 따위는 없었다. ‘지금도 당신은 잘 살고 있다. 그런 당신이 최고다. 당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라.’는 달콤한 말도 없었다. ‘이런 기법만 실행하면 당신의 삶은 단연 변하고 말 것이다.’라는 확신을 주지도 않았다. 다만, 정서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잔인하도록 자세하게 직면시킨다. 그리고 그런 것은 유전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쉽게 변하지 않을 거라고 일침을 가한다. 게다가 여러가지 기법을 잘 실행한다고 해도 ‘완벽한 삶을 꿈꾸지 말라, 단지 그 전보다 조금 편해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게다가 그러한 기법은 단순하게 효과를 발휘하지도 않는다. 삶의 태도에 관한 기법은 바이올린을 배우듯이 아주 천천히 익혀 나가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마침 최근에 아이가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 과정을 보아서 안다. 익히는데 오래 걸리고 어지간해서는 배운 티도 안나는 것이 바이올린이다. 게다가 바이올린은 늦게 배우기 시작하면 제대로 된 자세를 익힐 수조차 없다. 비유한 악기도 하필이면 바이올린이라니… 차라리 색소폰이나 기타처럼 늦게 배워도 상관없는 악기면 모를까, 늦게 시작해서는 좋은 바이올리니스트는 되기 어려운 악기에 빗대다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복잡하다.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끝없이 통제와 완벽주의를 강화할 것인가, 아니면 자존감을 강화할 것인가? 성과, 남들의 인정 같은 미끼와 거리를 두고 자존감을 고양하는 데 매달린다면? ‘놓아버리기’는 본질적인 것에 대한 포기가 아니다. (p.315)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평소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아닌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극심한 우울을 경험했다. 진짜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이런 무력감을 느낄지 난생처음 가늠해볼 정도로 이 책은 우울을 가져왔다. 이렇게 나를 찔러대는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에 느낀 저자의 약한 모습에 약간의 동질감을 느꼈다. 심리치료자이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는 저자. 그래도 별로 정감은 가지 않았다. 날카로운 칼을 벼리는 사람에게 정이 갈 리가 없다. 그러다가 이 책 말미에 나오는 에피소드에 마음이 스르르 녹았다. 저자의 친구인 에티엔의 이야기다. 에티엔의 과장되지 않은 인간을 향한 따스한 사랑, 그것 하나로 마음이 풀렸다. 엔티엔이 실제로 저자의 절친이든 가상의 인물이든 저자 자신이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에티엔을 표현한 저자의 언어 속에 이미 따뜻함이 보였다. 그래서 다시금 날을 벼린 칼을 든 저자에게 다가가며 글을 쓴다. 정서적 문제와 그로 인한 자기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자아상을 반영하는 타인과의 관계의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인간의 지성으로 조금씩 풀어갈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묘한 위로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포기하고 손을 놓을 수 있는 능력은 그 자체도 어렵지만,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행동을 개시했다면 더욱더 어려워진다. 사람에 대한 조종을 다룬 모든 연구가 보여주는 바대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함정에 빠져서 자기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 일을 계속하곤 한다. 우리는 이러한 경향이 있음을 분명히 알고 스스로에게 어떤 권리를 주어야 할 것이다. : 실수할 수도 있는 권리, 그만둘 수도 있는 권리, 의견을 바꿀 권리, (남들을) 실망시킬 권리, 완벽하지 않은 결과를 거둘 수도 있는 권리 (p.313)
크리스토프 앙드레, <나라서 참 다행이다>, 2010, 북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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