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잘 모르는 사람과의 잠깐의 스침에서 마음이 불편한 상황이 있었는데, 그 일을 자꾸만 곱씹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유리멘탈인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하지 않는다고 부정되는 것도 아니다. 맞는 것은 맞다고 인정하고 해결할 방법을 찾거나, 적응하거나, 내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맞는 것을 아닌 척하면, 진짜 내 모습은 갈 곳을 잃어버릴 뿐이다. 심리학에 관심이 지대했던 때가 떠올랐다. 진지하게 심리학을 공부하려 했다. 두꺼운 심리학 기본서를 읽고 대학원에 심리학과로 입학 원서를 넣었다. 입시에 실패했는데, 그 당시 심리학과의 경쟁률은 최고치였다. 달려들고 보니 경쟁이 치열한 시기와 맞물릴 때가 종종 있다. 공무원 시험도 경쟁률이 최고치일 때 보았고 겨우 붙었다. 치열한 심리학과 경쟁률을 뚫고 끝까지 해 볼까 생각하던 차에, 다른 경로로 심리학을 배울 기회를 얻었고, 그렇게 치직치직 김을 빼고 났더니 심리학으로 대학원을 갈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았다. 이후에 다른 학문으로 대학원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고, 타과 학생이지만 심리학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관련 과목을 수강하고 박사 과정 마지막 학기에는 <고급집단상담>까지 들었다.
내 마음을 알고 싶은 마음에 배우고 싶던 심리학과 상담 과목을 목 축이듯이 배웠으니까 이후에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을 다 이해하고 지혜롭고 영리하게 관계를 맺고 관계를 끊어내며 살고 있을까? 분명히 대답할 수 있다. 아니다. 보이지 않는 패턴이 다시 무늬를 그리며 이어진다. 아무리 배워도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사기에 한 번 당한 사람은 또 비슷한 종류의 사기에 당하기 쉽다. 사람과의 관계가 한 번 틀어진 사람은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비슷한 방식으로 꼬여 버리기 쉽다. 왜 자꾸 비슷한 일이 같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일까? 똑같은 사건, 똑같은 문제가 한 명에게 일어난다면 상황이나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아볼 때이다.
몇 년 전에 교회 부흥회의 설교자가 청중에게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제각기 어려움을 말하는데, 한 명이 관계 문제를 밝혔다. 집과 직장, 사교 모임 모두 불편한 사람들이 있어서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설교자는 재치 있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민이 되시겠네요. 그런데 주변이 모두 문제라면, 자매님 스스로를 돌아보셔야지요.’라고 대답을 했다. 그 웃음 뒤에는 뭔가 의미심장한 것이 있었다. 주변 모두가 문제라면, 그리고 비슷한 문제가 반복된다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정말로 긍정적으로 살고 싶다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시다.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안다면, 작은 것들에 일일이 지나치게 신경 쓰고 연연하는 마음의 작용을 막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p.93)
미즈시마 히로코, <유리멘탈을 위한 심리책> 2021 (주)웅진씽크빅
당신 주변에 막말하는 사람이 많은가? 막말하는 사람 때문에 고민을 한다면 어디에나 막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무례하게 말하는 사람은 당신 주변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어디에나 존재한다. 막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막말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계속 그런 어법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듣기에는 막말인 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막말하는 사람의 존재는 인정하고 그에 대응하는 자신의 방법을 돌아볼 일이다. 막말을 들으면서도 분위기가 썰렁해 질까 두려워서, 혹은 자기가 속 좁은 사람으로 보일까 봐 너털웃음을 짓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웃음이 또 다른 막말을 막아주지 못한다는 것을 놓치고 있는 자신을 돌아볼 때이다. 또한 분위기나 남들의 오해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일깨워 줄 때이다. 분위기 좀 썰렁하면 어떤가? 속 좁은 사람으로 보이면 어떤가? 집에 와서 이불킥을 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불쾌하다는 것을 굳은 표정으로 드러내면서 다음 막말을 막길 바란다. 막말 대신 다른 상황을 넣어도 같은 논리가 성립된다.
누군가에게는 유머로 들리는 말이 나에게는 막말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막말이지만 나에게는 우스갯소리로 들린다면 맞고 틀린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따라 다르게 판단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뜻이다. 감정은 불변의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는 것이며 진리도 아니고 명확한 판단의 대상도 아니다. 오로지 그때그때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충실히 받아들이자. 내 감정이 틀렸나?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감정에 정답도 오답도 없기 때문에 판단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소하고 의미 없는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느라 자신의 시간을 발목 잡힌 것 같은가? 그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것이 자신을 받아들이는 방법, 긍정적으로 살기 위한 방법이다. 가라앉은 기분이든, 고조된 기분이든 마음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기만 해도 의미 없는 사소한 사건이 삶의 시간을 쥐고 흔드는 것에서 멀어질 수 있다.
‘남이 나를 소심한 사람으로 보면 어쩌지? 내가 좋은 분위기를 망쳐 버리면 어쩌지?’ 하며 남의 기분을 살피고 전전긍긍 만나야 하는 관계라면 진지하게 왜 그런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지 살펴볼 일이다. 꾸미지 않은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관계라면, 직장이나 학교처럼 특별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만나는 것이 아닌 한, 왜 그런 상황을 유지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나의 본연의 모습을 인정해 주는 행복한 연결이 있는 만남이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집에 필요 없이 쌓여 있는 물건은 버리고 소중한 것으로 채우며 정리를 하듯이 인간관계에서도 쓸데없는 관계에서 인정받으려는 무상한 욕심은 버리고 진정한 연결이 있는 관계로 채워갈 필요가 있다. 나를 꾸미고 만나야 하는 관계를 유지하려고 나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관계를 위한 시간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행복입니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 줄 파트너를 찾는 건 아주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꾸미지 않으면 나를 싫어하겠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런 상대와 왜 함께 있으려 하는지를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세요. (p.108)
미즈시마 히로코, <유리멘탈을 위한 심리책> 2021 (주)웅진씽크빅
연결은 타인과의 연결 말고도 자기 자신과의 연결이 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자신과의 연결이다. ‘내가 부족하니 무엇을 해야 하고, 나의 어떤 면은 못났으니 숨기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과의 연결이다. 스스로를 탓하고 바뀌기를 바란다면, 혹은 부족한 모습을 꾹꾹 눌러 억압한다면 혼자 있는 시간도 편안할 리가 없다. 자신과의 연결은 타인과의 연결보다 더 중요하다. 자기 자신도 스스로 반기고 존중해 주지 않으면,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 어렵고, 늘 타인을 곁에 두려고 하다 보면, 관계에 끌려 다니기 쉽다.
연결은 눈으로 보이는 타인과의 연결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혼자일 때도 느낄 수 있는 연결을 가리킵니다. 바로 자기 자신과의 연결이지요. 자신과의 연결이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어딘가를 부정하거나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혹은 자기 자신에게 평가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로 있는 것이 자기 자신과의 연결입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진심으로 연결되었다고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상대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준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때는 상대와도 연결되어 있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p.167-168)
미즈시마 히로코, <유리멘탈을 위한 심리책> 2021 (주)웅진씽크빅
연결된 관계에서 어떻게 처신하면 현재를 누리며 살 수 있을까? 감사와 주는 마음이다. 받기를 바라며 주는 것은 미래의 보상을 바라는 행위이기에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사는 것이다. 주는 행위도 주는 것을 누리는 만족감이면 충분하다. 집을 청소할 때에도 집을 치워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아니라, 안락한 공간을 제공해 준 집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의미로 집을 치우면 지긋지긋한 집안일이 충만함으로 채워진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으로 선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는 행위 자체의 행복이 현재를 살게 한다. 관계도 그렇다. 나 자신에 대한 받아들임과 연결, 그리고 진실한 타인과의 연결, 여기에는 거짓 감정의 군더더기는 사라지고, 진심이 오가는 현재가 존재한다.
표지 사진 출처 : Photo by Sdf Rahba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