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이토록 사소한 것과 위대한 변화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작은 선택이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풀어나가는 첫 번째 한 걸음이 되기도 한다. 조그만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가져온 태풍처럼 말이다.
나의 삶의 모습을 거울로 비춰주는 듯한 책을 읽고 깊은 고민에 빠질 때가 있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는 책은 펄롱이라는 한 남자의 삶을 통해 나의 삶, 그리고 지금 이 시대를 생각하게 한다. 수백 년을 유지해 오는 막달레나 세탁소가 있고, 펄롱은 우연히 막달레나 세탁소에 속해 있는 어린 미혼모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학대를 당하는 그 소녀를 자신의 집으로 구출해 온다. 여기서 소설은 끝난다. 가난하지만 아내와 다섯 딸이 화목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펄롱의 모습, 미혼모 소녀를 만난 펄롱의 번민, 그리고 어린 미혼모 아이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것이 이 소설의 제재다.
짧은 소설을 다 읽고, 더 이상 이 소설의 생각은 하지 않고 싶었다. 생각해도 뚜렷한 답을 찾을 수 없고, 고민을 해도 끝낼 수 없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는 삼십육계 줄행랑이 먼저 생각난다. 가능하면 생각하지 않고 좋은 소설 한 편 잘 보았다, 하고 지나쳤으면 좋았으련만, 결국 이 책에 대해서 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추운 겨울날 소녀를 맨발로 걷게 하는 펄롱과 펄롱의 손에 들린 아내의 새 가죽 구두, 막달레나 세탁소를 간신히 빠져나온 소녀를 과연 사회가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을지 고민이 되는 지점이다. 순진하게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면서 모든 것이 잘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마을에서 영향력 있는 수녀원에 반기를 든 채, 펄롱은 무사히 그 상황을 넘기고, 자기 가정이나 건사할 수 있을까?
시대적인 상황을 보면 실존했던 막달레나 세탁소는 소설 속 펄롱이 아이를 데리고 나온 시점에서 10년 내외의 기간 안에 폐쇄가 된다. 이미 막달레나 세탁소 - 아마도 원래 취지였던 구빈원의 기능을 하던 자선기관은 폐해가 더 부각된 역기능적인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펄롱 같은 사람이 두 명이 되고, 네 명이 되고 수십 명, 수백 명이 되면서 막달레나 세탁소의 문제가 표면화되고 그 안에 있는 아이들이 조금 더 나은 환경으로 옮겨졌을 거라고 믿고 싶다.
미혼모와 미혼모의 아이들을 학대한 것으로 알려진 막달레나 세탁소에 대한 이야기의 어떤 부분이 진실인지 어떤 부분이 과장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막달레나 세탁소 이야기를 들으면서 좋은 의도로 시작한 복지단체여도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은밀히 운영되면, 폐단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힘의 균형이 깨지고 은폐된 어떤 곳에서는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일어나는 일과 유사한 행위가 계속 펼쳐지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보통 사람으로 묘사된 주인공인 펄롱 아저씨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고 있지만, 한 끗 차이로 나도 피해자인 미혼모 소녀가 될 수도, 또한 악에 대한 감수성이 무너져 버리는 순간, 막달레나 세탁소를 운영하는 수녀원장 같은 사람이 될 소지도 있음을 일깨우는 책이다.
* 표지 사진 : Unsplash의 Robert Kla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