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가해자가 더 당당한 법
때론 가해자들이 더 당당하다. 그들은 본래부터 힘을 가지고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가 아닌)가해자가 된 것이므로 처음부터 추는 기울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건이 발생한 후 피해자가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할때도, 그들은 그 사건을 없는 일처럼 무마시키거나, 혹 언급되더라도 많이 부각되지 않고 부드럽게 지나가게 하기 위해서, 피해자가 자신의 억울함과 명예 또는 금전적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보다, 훨씬 더 많은 방법을 취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들은 본래부터 힘의 우위에 있기에 정신적으로도 여유롭다. 그래서 피해자가 자신의 억울함을 구제 받고자 하는 선택을 하려고 할때, 심지어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아이고, 경옥씨가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본데.. 억울하다고, 자기 권리 찾겠다고 하다가 평생 힘들게 사는 경우도 많아요. 때로는 억울한 것도 참고 그러려니
하고 사는 것이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일 수도 있는 거에요.”

이건 정말 내가 한 10여년 전에 직접 들은 말이다. 물론 이 말을 내게 한 사람은 본인이 이런 말을 했는지 조차 잊어버렸겠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기억 한다(물론 지금은 그때처럼 무서움을 동반한 떨림이나, 공포 라는 단어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리고 그 때 내게 이 말을 한 사람 말고도 몇몇의 사람들이 내게 비슷한 뉘앙스의 말들을 했다(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무서워서 집에 돌아와서는 혼자 울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의도했던 대로, 그냥 참고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나는 정말 그 사람의 말처럼 지혜로웠던 것일까?
나는 그 지혜로움 덕분으로 그 일로 인해 그다지 힘든 일을 겪지는 않았다. 물론 그 일 자체가 정신적으로 힘이 드는 일이었고, 그랬기에 그 분으로부터 저런 소리를 들었던 것이겠지만, 그분의 조언처럼 참고 그러려니 하면서 지낸 까닭으로 이후에, 내가 그 일을 참지 않았을 경우 그것으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다른 종류의 어려움으로 부터는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일이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억울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노력을 시작했을때에 내가 맞닥뜨려야 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각종 힘듦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뿐이지, 이미 그 억울함의 대상이 된 사건은 내 인생 중의 한 페이지에 발생했던 것이었고, 그것을 없는 일로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냥 무한한 지혜로움으로 억울함을 덮었을 뿐이다.
그즈음 나는 판사와 의사와 성직자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을 한적이 있었다. 사람이 어찌 다른 이의 허물을 두고 단죄할 수 있을 것이며, 사람이 어찌 다른 이의 생명을 좌우하는 행위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다른 이의 삶에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자리를 인정해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타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의 거의 일 뿐, 우리는 타인의 죄를 판단할 수 없으며, 타인의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이런 일들이란, 만약 인간 세계의 우위에 있는 하늘의 세계가 정말 존재하는 것이라면, 판사와 의사의 영역이란, 마땅히 하늘의 세계에 속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귀하고 존귀하신 신께서 공사다망하신 중에 인간 세계에 내려와서 이러쿵 저러쿵 갖가지 사건들에 대하여 결정을 내리고 모든 인간의 생사를 결정하기는 너무 힘이 들테니, 비록 같은 인간에 불과하지만, 그들 중 어떤 이들에게 신이 해야할 일들을 잠시 위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인간 세계 그 어떤 일에 종사하는 사람보다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이 해야 할 일들을 감히 인간의 몸으로 위임받아 수행하는 것이니, 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일까, 대체 그 일에 얼마만큼의 무게를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아 만약 판사와 의사들 중 어느 누구라도 자신이 하는 일들에 대한 가치를 심각하게 생각해 본다면, 자신의 일에 부여된 가치가 너무나도 무거워 그들은 어쩌면 인간으로서 누리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자신의 일에 인생 전부를 걸리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무나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자신의 일이 가지는 무게를 진정으로 느끼는 사람만이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성직자도 마찬가지. 인간으로 태어나서 신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사람들이란, 대체 그 업의 무거움을 무엇으로 버텨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이러니 하고, 완벽하지 않은 까닭으로, 이러한 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 이런 사람은 정말 저런 일을 하면 안돼. 하는 사람이 꼭 시험에 붙어서 그런 일을 하고 있고, 아, 저런 사람이 정말 그 일을 해야지. 하는 사람은 꼭 시험에 떨어져서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니까. 그리고 젊었을때 불의를 참지 못하고, 정의를 위해서 싸웠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과 타협하게 되는모습을 보이는 경우를 우리는 이미 자주 접하지 않는가?
소신이 없는 사람은 차지하고서라도, 소신이 있는 경우라도 그 소신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란 얼마나 힘든일인지, 우리는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불합리성과 부조리함에 절망하지 않도록, 판사와 의사와 성직자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만큼은 자신의 업이 가지는 무거움을 한껏 느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