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
그리운 얼굴
내 마음속에는 사라지지 않는 이름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 집은 형제가 넷이다. 그중 위에 오빠는 나보다 두 살 많고, 지금은 60살이 되었을 나이다. 하지만 우리는 20년 가까이 연락이 없다. 중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와 장난을 치면서 상대편 친구가 큰 상처를 입었고, 그 부모는 우리에게 큰 액수의 돈을 요구하면서 오빠에게 집안을 말아먹은 놈이라는 아빠의 비수 같은 말로 평생 죄책감에 살아야 했다. 아빠가 집장만 하려고 모은 돈을 모두 내주었다는 말을 후일에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도 어린 장난이었고 부모님은 충분히 감싸 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오빠는 점점 위축되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늘 힘들어했다. 오빠는 착한 사람이었다. 독한 구석 하나 없었고, 자신의 뜻이나 꿈을
한 번도 제대로 말해본 적이 없었다. 그로 인해 술을 자주 마시면서 늘 미안하다는 말만 우리 가족에게 말하는 오빠의 모습이 안쓰럽고 불쌍하기까지 했다. 엄마가 암 투병을 하실 때도 오빠는 항상 엄마 곁에서 함께 간병을 했었는데, 오빠는 엄마를 떠나보낸 후에도 마음을 잡지 못하고 결국 집을 나가버렸다. 그 뒤로 소식이 간간이 들리긴 했지만, 지금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이 아예 끊어져 있다.
아버지가 우리집에 오시면서 오빠의 소식을 궁금해하셨다. 아빠는 내친 자식이라고 말을 하셨지만 당신이 죽기 전에 오빠를 만나고 싶어 하셨다. 아빠는 부모자식의 그 오랜 원망의 끈을 풀고 살고 싶어하셨다. 가족관계증명서를 준비해서 경찰서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지만 오빠의 소식은 알 수가 없었다. 성인인 상태에서 집을 나갔을 경우에는 본인이 집으로 들어올 경우가 있으니 기다리라는 말이 최선이었다. 벌써 20년이 넘었는데... 오빠는 2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소식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 장례식장에서 오빠의 빈자리는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지금도 소식 없는 오빠를 나는 늘 기다린다. 부모님께 늘 아픈 손가락이었던 오빠는 나에게도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오빠가 있음에도 장녀처럼 살아왔다. 부모를 챙기고 집안의 무게를 대신 짚어지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
그럼에도 나는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형제라는 혈연의 끈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딘가에서 살아 있다면 부디 건강하게 지내고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언젠가 "나 잘 살고 있어"라는 한마디라도 들을 수 있기를 오늘도 나는 그 이름을 마음속에서 조용히 부르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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