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막대기를 꽂다
김혜남 작가의 생각이 너무 많은 어른들의 위한 심리학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어젯밤 무릎을 딱! 친 글귀가 있었다. 우리는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 앞에서 종종 멈춰 선다.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해지고, 걱정과 분노가 한꺼번에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거나, 감정을 억누르거나, 스스로를 다그치며 더 버텨보려 한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깊이 와닿은 부분에 김정운 교수의 글 이야기를 잠깐 하는데 에스키모들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 그들은 설명하지 않고, 분석하지 않고, 해결책을 찾지 않는다. 그저 걷는다. 슬픔이 가라앉고 마음이 풀릴 때까지 하염없이 걷는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마음은 그 뒤를 따른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을 만큼 마음이 가벼워지는 지점에 도착한다. 그곳에 막대기를 꽂는다. 그 막대기는 “여기까지 왔었다"라는 증거이자,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고 끝까지 데려온 흔적이다. 휴식은 멈추는 일이 아니라, 내 안의 나와 끝까지 동행해 보는 일이라는 걸 이 이야기는 조용히 알려준다. 우리는 흔히 쉬어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충분히 가본 사람만이 제대로 돌아올 수 있는지도 모른다. 삶이 힘들수록 더 빨리 돌아서려 애쓰는 우리에게, 이 막대기는 말한다. 괜찮아질 때까지 가도 된다고, 그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라고.
살다 보면 다시 화가 나고, 또다시 견디기 어려운 날이 온다. 그때 우리는 이전에 꽂아둔 막대기를 발견하기도 하고, 발견하지 못하기도 한다. 막대기가 보인다면 예전보다 더 멀리 왔다는 뜻이고, 보이지 않는다면 그때보다는 덜 아프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이미 한 번 스스로를 구해낸 사람이다. 누군가 대신 꽂아준 막대기가 아니라, 남의 위로나 조언이 아닌, 내 발로 걸어가 내 손으로 꽂은 표식이기에 그 의미는 더 단단하다. 삶이 아무리 거칠어도, 우리 안에는 반드시 길을 찾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이 이야기는 분명히 보여준다. 넘어졌던 자리, 무너졌던 순간은 실패의 기록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증명의 자리다. 오늘도 각자의 방식으로 걷고 있을 누군가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지금 걷고 있는 그 길 끝에, 나만의 막대기를 꽂을 지점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그리고 언젠가 돌아오는 길에, 그 막대기를 보며 알게 될 거라고. 나는 생각보다 멀리까지 왔고, 다시 일어설 힘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희망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그렇게 조용히 나를 데리고 끝까지 가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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