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글을 쓴다

by 도르가

나를 다독이는 손길

오래전, 방송국에서 일하던 시절이 있다. 국문과를 나오지도 않았고, 체계적인 작가 수업을 받은 적도 없었다. 방송일은 나에게 행복한 직업이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글 쓰는 일을 좋아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붙들고 오래 씨름하는 시간이 좋았다. 하지만 ‘작가’라는 이름은 쉽게 허락되는 호칭이 아니라고 여겼다. 책을 낸 사람만이 불릴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좋아하면서도 한 발 물러서 있었다.

우리 안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세포마다 각인된 장면들, 설명되지 못한 감정들, 끝내 꺼내지 못한 말들.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허기진 마음을 채우듯 이야기를 쏟아낸다. 말을 한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쓰는 일이다. 어떤 이는 끝까지 들어주고, 어떤 이는 자신의 목소리에만 몰두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말을 하지 말걸.” 혹은 “그 말을 했어야 했는데.” 같은 후회가 따라오기도 한다. 그렇게 쌓인 감정의 퇴적층이 결국 글의 재료가 된다. 막상 글을 쓰려 하면 또 멈칫하게 된다. “오늘은 무엇을 써야 하지?”라는 질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밥을 지으며 “오늘은 뭘 먹지?” 고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쓰는 것 같은데, 왜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을까. 그럴 때 나는 단어 하나를 붙든다. 왜 이 생각이 떠올랐는지 하루 종일 되묻는다. 그러다 보면 오래된 기억의 문이 열린다. 잊힌 줄 알았던 장면이 되살아나고, 그때의 계절과 공기, 감정이 함께 떠오른다. 때로는 힘들다. 그래도 어차피 마주해야 할 시간이라면, 피하지 않기로 했다. 글은 타인의 박수를 받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나와 독대하는 시간에 가깝다. 설명되지 않던 감정을 의자에 앉혀 마주 보는 일. 그 과정에서 나는 나를 이해하게 된다. 인정은 용서로, 용서는 사랑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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