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총량의법칙
25년도의 무게는 얼마였을까
올해를 돌아보며 힘들었던 일을 떠올려 보다 잠시 멈칫했다.
선명하게 나를 힘들게 했던 장면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가 고백되었다.
큰 상처 없이, 큰 흔들림 없이, 큰마음고생하지 않고 25년 12월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내게는 놀라운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하루의 평안이 기적이라고 한다. 아무 일 없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가장 큰
선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 올해를 돌아보면 기쁘고, 축하할 일이 더 많았던 해였다.
이 사실을 담담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이 시간을 잘 건너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생 총량의 법칙
"사람이 평생 겪는 고생의 총량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한다. 고생을 겪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시기에 고생이 몰아서 오면 그 시기가 지난 이후의 삶에서는 비교적 평안하고 평온한 시간이 찾아오고, 젊을 때 너무 수월하게 흘러가면
한번은 고생이라는 녀석이 찾아온다는 말을 들었다.
남보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면서 여러 가지로 맘고생을 많이 했다. 육. 해. 공 다 겪었던 내 인생은 언제쯤 맑은 구름이 뜨는 걸 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힘들어서 남몰래 울던 날도 많았는데, 정작 내 식구들은 그런 나의 마음을 아무도 모른다. 아직까지도.... 가까이 있던 남편도 "네가 고생한 게 뭐냐?'라고 했으니깐... 서럽고 힘들었던 시간은 영원할 것만 같았다. 고생 총량의 법칙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고생하고 있다면 그냥 견디라고 말하고 싶다. 견디다 보면 어느날 웃는날이 찾아오고 그때 고생했던 모든것들을 웃으면서 이야기 하는 날이 반드시 오게 된다.
웃는 날 온다
어느덧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큰 아이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잘 꾸려 가고 있고, 작은 아이도 열심히 자신의 위치에서 인정받으며 사회생활을 잘 하고 있어서,
손댈 곳이 없다. 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적은 소소한 곳에서 일어난다. 내가 치러야 할 일들을 다 치르고 이제는 잠시 쉬어가라는 평온의 시간을 나는 지금 누리고 있다. 하루의 시작이 무겁지 않고 하루의 끝이 무사하다는 사실 한 가지 만으로도 감사가 된다.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평안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살기 싫을 만큼 너무, 너무 힘이 들었다. 거기에다 부모님의 소천이 나에게 큰 슬픔으로 겹쳐서 죽을 것 같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살아야 하는 이유는 알겠는데, 나에게 닥친 이 문제들을 어떻게 만나고 해결해야 할지 막막했던 시간들은 무거운 돌이 되어 나를 늘 짓누르고 있었다. 그 시절을 떠오르면 나는 울컥하며 눈물이 나온다. 지나간 과거이다.
나는 지금 매일 평안하다.
숨겨놓은 돌덩이
올해 가장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니 마음 저 깊은 곳에 숨겨놓은 녀석이 고개를 빼꼼히 내민다.
물 위로 떠오르는 불순물처럼 애써 외면해 보려 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내게 찾아오는 가족이라는 이름...
우리 형제는 사남매인데, 우리는 어릴 적부터 그리 살가운 형제들이 아니었다. 서로를 위해주는 것도 없었고, 그리 친하지도 않았고, 어릴 적엔 오빠한테 대들다 눈이 밤탱이 되게 맞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건 뭐지?.. 나는 오빠를 미워하지 않는다. 늘 그리운
오빠인데, 어릴 적에는 뭘로 그리 싸웠을까? 늘 바쁜 부모님 때문에 우리 가족은 한자리에서 밥을 먹은 기억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 어릴 적 기억은 늘 외로웠던 시간이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 중에 하나였다.
꽁꽁 숨겨놓은 돌덩이 하나는, 엄마가 20년전 돌아가시고 나서 형제 사이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아빠가 돌아가실 땐 거의 남남이 되어 지금까지 외면하고 살고 있다. 섭섭함이 쌓이고 미움이 쌓이고 각자 살아가는 것도 바쁘고 하니 점점 멀어져 갔었다. 우리 집만 그럴까? 가족 생각만 하면 마음이 무겁다. 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돌덩이라 그런 것 같다. 서로 오해를 풀어보려고 노력도 했지만, 안되었다. 시간이 지나니 나도 이제는 더 이상 내 마음에 돌덩이를 덜어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서로 각자의 방향이
달라서 다른 길을 가겠다고 하는데, 굳이 붙잡아서 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
풀고 싶지 않은 수학 문제
우리 가족의 관계는 풀고 싶지 않은 어려운 수학 문제와 같다. 정답이 없는 것도 아니고 풀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풀이 과정에서 내 마음이 너무 많이 소모될 것 같아서 시도도 하지 않고 싶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갑자기... 잘 살고들 있으려나? 하는 궁금함은 있지만 그 질문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때의 서운함, 그때의 괘씸함이 궁금증을 이내 덮어 조용히 폐기해 버린다. 문서 세단기에 넣어버린 문제는 갈가리 찢겨 내려갔다. 지금 내 마음은 해결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화해를 하고 싶은 마음도 아니다.
힘들었던 순간을 떠오르니 가라앉아 있던 이 문제가 고개를 내밀고 어찌해보라고 옆구리를 찌르지만 나는 다시 폐기시켜 버렸다.
모두들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니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잘 헤쳐 나가겠지.나는 지금 큰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에 일어나는 작은 기적들을 만나면서 지나간 시간의 고생을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정성껏 살아내고 있다. 견디었던 시간이 감사하고, 울었던 시간도 감사하다. 다시 일어서서 힘을 내고 있는
지금이 감사하다. 25년 하루하루 살아내면서 "오늘도 평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이 내 인생에 오래도록 쓰이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