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나에게 -어린아이들의 숨바꼭질처럼
글들이 보인다
와!
책을 읽고 마음에 글들이 담기기 시작했나 보다.
올 12월까지 서른 권의 책을 읽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분명 고개를 끄덕였었고, 형광펜으로 밑줄도 긋고, 내 생각을 써놓기도 했는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책들을 분명히 읽었는데, 내 안에 책 한 권처럼 남아 있는 게 뭐가 있지? 열심히 꼭꼭 씹어 읽었는데 그것에 비해 남은 게 없는 것 같아서 서운했다. 맛있는 카페라테를 마신 후 남겨진 커피 한 방울이 없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주 읽은 고명환 작가의 문장이 떠올랐다. "생각은 하는 게 아니다. 생각은 떠오르는 것이다"
이 한 문장이 이상하게 계속 내 마음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그 문장 하나가 다른 생각들을 불러왔다.
생각에 꼬리를 물고, 기억이 이어지고, 그동안 흩어져 있던 문장들이 서로를 찾듯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떠오르며 남는 글들
그제야 알았다. 책은 읽는 순간 남는 게 아니라, 삶의 어느 순간에 떠오르며 남는다는 것을. 내 안에 책은 한 권의 형태로 아직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문장으로, 감정으로, 감각으로, 생각의 씨앗으로 심어져 있는 것을 믿고 있기에 그 씨앗들은 조용히 어느 날 고개를 불쑥 내밀며 자랄 것이다. 물이 필요할 때, 햇빛이 비칠 때 그때 자랄 것이다. 무엇이든 떠오른 생각을 써보고 있다. 말이 안 되는 글도 있을 것이고, 문법이나 어감이 이상한 글도 있겠지만 억지로 짜내는 글이 아니라,
떠오르는 바람의 길에 살포시 앉은 내 어깨를 툭툭 털듯이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책 읽기 잘한 것 같아요
내가 책을 읽는 것은 말을 잘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똑똑해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나를 회복시키고 싶고 나에게 당당하고 싶어서 책을 읽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내 안에 있는 언어들이 조금씩 정리가 되고 있다. 말을 잘하는 언어의 마술사가 아닌 타인을 존중하며 다치지 않게 설득하는 기술도 배우는 것 같다. 책을 통한 도전도 몇 가지가 생각났다. 재밌다.
계속 읽어보려 한다. 어떻게 내 삶이 변화되는지
궁금해 지고 있다.
어린아이들의 숨바꼭질
시골집 굴뚝에 연기가 피기 전, 어린아이들은 숨바꼭질을 한다. 해가 완전히 기울기 전, 저녁밥 냄새가 나기 전의 의 그 짧은 시간, 아이들은 가장 잘 숨을 곳을 찾는다. 장독대 뒤, 헛간 옆, 나무 그림자 속.
서로 숨을 죽이고, 웃음을 삼키고, 나름의 긴장감 속에 술래의 발소리를 기다린다.
글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늘 눈앞에 드러나 있지 않다. 어디엔가 숨어 있다.
책 속에 숨어 있기도 하고 기억의 틈에 숨어 있기도 하고, 하루를 살아낸 감정의 뒤편에 숨어 있기도 하다.
나는 요즘 글을 많이 쓰고 있다. 생각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으면 그것을 붙잡아 물어본다. '어디서 온 거니?' 떠오르는 생각은 책 속에 숨어 있기도 했고, 기억의 틈에 숨어 있기도 했고, 지나간 어느 하루를 살아낸 감정의 뒤편이기도 했다. 나는 술래가 되어
이 골목, 저 골목을 그렇게 찾아다녔다.
글은 억지로 잡는다고 잡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잡으려 하면 어느새 휙! 날아가 버려서 '내가 금방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데? 뭐지?'라고 말할 때가 있다. 참 야박하게 그렇게 빨리 휙! 날아가 버린다. 나오라고 나오는 녀석은 분명 아니다. 떠오르는 글은 기다려야 한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기 전까지, 하루가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아직 마음이 따뜻할 때까지.
글들이 숨어서 찾지 못하면 기다리면 된다. 내일이나 모레 아니면 또다시 어느 날 문득 내게 다시 찾아온다. 조급하지 않게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 굴뚝에 연기가 피고 밥 냄새가 나면 아이들은 엄마가 부르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간다. 숨바꼭질이 끝났다는 신호다.
글도 그렇다. 오늘 떠오른 글을 잡고 술래 찾듯이 찾으면 하루는 조용히 마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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