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민영의 한 솔로] 14화 불을 만나다
해가 다 저물지 않은 9월의 초저녁이었다. 사방이 아직 훤한데도 서둘러 불부터 피웠다. 불길이 강하게 타올라서 조금만 가까이 가도 열기가 후끈했다.
‘불은 자기 별명처럼 불을 좋아하는구나!’
비록 진짜 캠핑이라기보다 캠핑 체험에 더 가까웠지만 불이 모닥불 색을 알록달록하게 물들이는 인기 아이템과 마시멜로까지 준비해왔다. ‘불은… 캠핑을… 좋아한다.' 마음의 사전에 한 자, 한 자 기록했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성덕이 된 건가? 팬심이 모닥불보다 더 크게 타올랐다.
불을 처음 만난 건 지난 3월이었다. 연말부터 새 대통령이 선출될 거라고 떠들썩했지만 나도 보통의 사람들처럼 ‘될 대로 돼라’는 심정이었다. 해가 바뀌면서 선거의 양상이 더욱 한심하게 흘러갔다. 유력한 두 후보가 모두 20대 남성의 지지율만 의식하고 그들의 본거지인 인터넷 커뮤니티 여론의 눈치를 보더니, 급기야 보수 진영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카드로 뽑아 들었다. 여성 혐오에 기댄 공약은 큰 인기를 얻었다.
무기력에 압도된 나는 사태를 그저 방관했다. 페미니즘은 세계적인, 막을 수 없는 흐름인데 이러한 퇴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했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OECD 가입국 가운데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이며, 여성의 승진을 가로막는 유리천장 부문에서도 10년째 꼴찌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국민의 절반이 속한 성별의 처우 개선은커녕 여성을 더 열악한 처지로 내모는 공약이 지지를 얻다니. 지지율이 발표될 때마다 포기에 한 발씩 다가섰다. 그러니까 페미니스트인 나는 시사인의 ‘20대 여자’에 등장한 표현대로 정치적인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본인의 정치적 의사는 있지만 심판하기를 기다리는 집단, 즉 ‘부유하는 심판자’에 속했다.
해가 바뀌고 이재명 후보 선대위에 합류하면서 여성위원회에 소속됐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그때까지도 이재명 후보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했다. 최초의 여성 국회부의장인 김상희 의원과 정춘숙, 권인숙 의원 등 민주당의 여성 의원들을 존경하지만 이 후보를 둘러싼 여러 가지 여성 혐오적인 논란이 문제였다.
그런데 민주당이 부유하는 심판자의 표심을 잡겠다고 나서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이때부터 이재명 후보 옆에 N번방 추적과 공론화의 일등 공신인 추적단 불꽃의 불, 박지현 전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나서며 2030여성의 지지를 호소했다.
불이 구심점이 되면서 페미니스트 내부에서, ‘여성 혐오적인 공약을 악용하는 보수에 대항하기 위해서 이 후보를 지지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추적단 불꽃의 활약상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가 정치에 입문한 과정은 자세히 알지 못한 나는 관련된 기사를 모조리 검색했다. 그리고 불을 따라서 이재명 후보를 공개 지지하기로 결심했다.
선거까지 닷새가 남은 3월 4일, 2030 여성 유권자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보신각 집중 유세(이재명으로 마음 돌린 2030여성들의 지지선언)에서 후보자 지지 연설에 나서줄 것을 제안받고 수락했다. 아직 겨울옷을 입은 인파 속에서 처음 불을 만났다. 불은 지지자들에게 붙임성 있게 다가가서 인사하고 촬영 요청도 기꺼이 들어주었다. 그에게 불쑥 다가가서 팬이라고 말하자(내향적인 나로서는 드문 일이다) 그도 웃으면서 나의 팬이라고 인사했다.
이어진 연설에서 불은 여가부가 폐지될 경우 어려움에 처할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하다가 감정이 북받쳤는지 약간 울먹였다. 그날 보신각 유세는 그런 자리였다. 3월 8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민주당의 상징인 파란색으로 물들인 장미를 나눠주고 선거 로고송이 쉬지 않고 울렸지만 여성들은 저마다의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그곳에 모였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고 바짝 긴장한 채로 무대에 올랐다. 정면에 수십 대의 카메라와 맨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노트북을 펼쳐 든 기자들이 보였다. 충분히 준비하고 연습했음에도 정신이 잠깐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위장에서 위액이 끓는 것 같았다.
후보와 관련된 논란을 제외하고도 이재명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일은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여성 혐오로 점철된 선거인 만큼, 그럴수록 더욱 여성인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는 게 옳다는 주장이 우세였다. 상황이 절박할수록 여성 후보에게 희망을 걸고 결과와 상관없이 유의미한 득표율을 보여줘야 한다는 거다. 여기에, 바로 그 결과 때문에 이재명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어떻게든 윤석열 후보의 당선을 막고 봐야 한다는 거였다.
고민 끝에 여성 후보를 외면했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후자를 선택했다. 그 흐름이 갑자기 대세로 자리 잡았고 부유하는 심판자들이 단숨에 결집했다. 이처럼 극적으로 이뤄낸 연대가 훗날 어떤 결과를 낳을지 그때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막연하게 이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선거 때마다 철저하게 소외됐던 기억과 존재함에도 존재하지 않는 집단이 되기를 반복하기보다 싸우기를 선택했다. 그 결심의 중심에 불이 있었다.
불은 마지막까지 서울 전역을 돌면서 그가 말한 대로 죽을힘을 다해서 잔다르크처럼 싸웠다. 그러자 지지율 격차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누구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다. 선거 전날 밤, 마지막 유세가 열린 홍대거리에 갔다. 우리 희망의 증거인 불을 한 번 더 만나고 싶었다. 유세가 모두 끝난 자리에 불이 혼자 남아서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불에게 우리의 바람이 이루어질 것 같다고 말했고 그와 마주 보면서 웃었다. 그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거라곤 그 희박한 희망 하나뿐이었다.
불을 만나기 전에 나는 정치를 얼마쯤 냉소했다. 어떤 정치인도 우리의 뜻을 대변하지 못했고 여성 인권은 언제나 후순위였다. 교육, 가족, 돌봄보다도 뒤로 밀리다가 결국 여가부 폐지 공약이라는 국면을 맞았다. 반대로 불은 너무나 낯설고 이례적인 상징성 그 자체였고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20대 여성의 모습 그대로 한국 장치의 중심에 섰다.
그의 이름이 불리면서 우리도 함께 이름을 얻었다(추적단 불꽃의 저서도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이다). 그러자 평생 처음으로 정치가 다르게 보였다. 한 사람을 우리의 대표자로 만들려는 이들의 열망, 그리고 그 숱한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서 현장에서 헌신하는 모습, 그 엄청난 에너지를 실감했다.
이후 불이 비대위원장이 되고 지방선거를 치르고 당 대표 출마 선언을 했던 그 몇 달간, 틈틈이 그에게 편지를 썼다. 처음에는 불이 혼자가 아님을, 한목소리로 지지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게 하고 싶었고 나중에는 우리의 이름을 불러준 그의 용기에 답하고 싶었다.
세상에는 영혼의 인간이 있고 열정의 인간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드물게 두 가지를 다 가진 사람이 있다. 불은 내가 살면서 만나본 거의 유일한, 열정적인 영혼의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