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시간을 여백으로 채우다.
전화가 온다. 이름 없는 번호로 무음의 휴대전화가 깜박거린다. 포털사이트에 번호를 검색해 본다. 알 수 없다고 한다. 계속 깜박거리는 이름 없는 번호. 꽤 끈질기다. 일단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라 혹시나 하고 받아본다. 건너편에서 내 이름을 부른다. 나를 아는 사람이다. 대학 선배
전시회를 보러 가자고 한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친구에게 들었다 한다. 오늘 바로 가자고 한다.
'시간이 남아도는 백수는 어떤 요구든 긍정해야 하나?' 자격지심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바쁘시겠지만" 같은 말이 무색하게 백수에겐 바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심심할 거라 생각해서 배려 차원에서 시간을 채워주려는 걸까.
어쩌면 선배는 좌절하고 있을 인생에 잠깐의 휴식을 주려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온종일 할 일 없이 배나 긁적거리는 백수가 맞긴 하다. 실제로 오늘 아침도 특별한 계획 없이 시작했고, 저녁까지 뭘 할지 정해진 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시간이 아무렇게나 채워져도 되는 건 아니다.
당사자 동의 없는 확신에 찬 배려와 관심은 까칠한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실례가 될 수 있음을 오늘의 경험을 통해 다시 배운다.
크게 기분이 나쁘거나 상처받은 건 아니다. 선배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오히려 고마운 마음도 있다.
그저 "제 시간도 존중해 주세요"라고 부드럽게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시간과 에너지와 감정이 소모된다는 것이다. "오늘은 제가 계획이 있어서요"라고 말하면 "뭐 하는데?"라는 질문이 돌아올 것 같고, "그냥 쉬려고요"라고 하면 "집에서 쉬나 전시회 보나 매한가지 아냐?"라는 말을 들을 것만 같다.
그러고 보니 여백이 필요했다. 디자인 작업을 할 때 어려운 것 중 하나는 무엇을 넣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빼느냐였다. 초보 시절엔 빈 곳이 있으면 불안했다. 하얗게 비어있는 공간이 필요함을 알면서도 뭔가 더 넣어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디자인은 답답했다. 텍스트와 이미지가 서로 침범하면 정작 중요한 메시지가 묻혔다. 시선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게 중요해 보이니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게 됐다.
비어있는 공간이 있어야 내용이 살아나고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게 여백이다. 요소들이 숨 쉬는 공간이고, 서로 침범하지 않도록 만드는 경계다. 그런 의미에서 여백으로 비워둔다는 것은 오히려 적극적인 디자인 행위다.
백수가 돼도 나름의 인생관과 루틴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침구를 정리하고 요기를 때운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한다. 드물게 디자인을 한다. 저녁엔 요리를 하고 휴식을 취한다. 남들이 보기엔 그냥 시간을 때우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현업의 촘촘한 긴장감이 없는 하루지만 그 시간이 나를 만든다.
생각보다 잘 살아가고 있다. 직장이 없다고 삶이 없는 건 아니다. 남들 눈엔 비어 보이는 시간이 나에겐 채워진 여백이다.
퇴사 후 처음엔 이런 여백이 불안했다. 빈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다. 무언가로 계속 채워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이 여백이 나를 나답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여백이 있다. 직장인에게도, 학생에게도, 주부에게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각자의 시간 속에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 여백을 함부로 채우지 말자. 선의라는 이름으로, 배려라는 이름으로, 빈 곳을 채워주려 하지 말자. 어쩌면 그 사람은 그 여백이 필요해서 일부러 비워둔 것일지도 모른다.
살펴보되 존중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여백을 마주할 때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라고 먼저 물어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