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캔버스에 '괜찮음'을 배치하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스스로 질문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대개 손에 잡히는 몇 가지 단어들을 떠올리곤 한다. 건강, 사랑, 명예, 원만한 관계, 그리고 경제적 풍요까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면서 내가 얼마나 진심으로 이런 가치를 원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손에 쥐었다고 해서 내 인생이 만족스러울까? 화려한 요소들로 가득 차 있지만, 어딘가 가벼워 보이는 디자인처럼 내 삶도 그렇게 흘러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디자인 작업을 할 때는 여러 요소가 필요하다. 강렬한 이미지, 완성도 높은 서체, 시선을 끄는 그래픽 소스 등. 하지만 그저 좋은 요소를 한데 섞어 놓는다고 해서 좋은 디자인이 되지는 않는다. 좋은 결과물은 요소들 간의 의미 있는 연결에서 나오는데 이때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감각이 바로 '균형(Balance)'이라 생각한다. 디자인에서 균형이란 단순히 모든 요소를 똑같은 무게로 배치하는 '대칭'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는 아주 작은 점 하나가 거대한 면의 무게를 견뎌내기도 하고, 강렬한 색채 하나가 무채색의 공간을 압도하며 전체의 안정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전체 레이아웃이 무너지지 않도록 매 순간 미세하게 힘의 배분을 조율하는 ‘무게중심’을 찾는 감각이다.
인생이라는 캔버스도 이와 닮아있지 않을까. 우리는 늘 성공이라는 굵직한 요소의 무게에 압도당하거나, 타인의 시선이라는 외부 압력에 휘둘리곤 한다. 나 또한 20년간 디자이너로 살며 모니터 속 공간에서 힘겹게 무게를 조율해 왔지만 정작 내 삶의 레이아웃은 본 적도 없는 타인의 기준에 정렬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조심스럽게 내 삶을 지탱해 줄 나만의 중심축 하나를 세워보고 싶어졌다. 바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태도다.
사실 '괜찮은 사람'이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단정 짓기는 어렵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괜찮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나 '멋진 사람'과는 결이 다르다. 착한 사람은 때로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맞추느라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멋진 사람은 타인의 감탄을 자아내기 위해 과도하게 자신을 포장하기도 한다. 디자인으로 치면 지나치게 화려해서 눈이 피로하거나, 너무 정직해서 지루해진 결과물과 같다.
여기서 내가 원하는 '괜찮은 사람'의 모습은 디자인 원리로 보자면 '비대칭적 균형(Asymmetrical Balance)'에 가깝다.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은 모나고 서툴러도 '스스로를 돌보는 긍정'과 '타인을 향한 공감'이라는 각기 다른 무게의 감정들이 내 안에서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상태다.
더불어 '존재'라는 무거운 철학적 용어나 '인간'이라는 조금은 차갑고 과학적인 느낌의 단어보다 '사람'이라는 말이 '괜찮은'과 함께 하길 바란다. '존재'는 너무 형이상학적이고 '인간'은 너무 분석적이다.
반면 '사람'은 적당히 온기가 있고, 적당히 실수하며, 그래서 그 틈 사이로 타인이 들어올 여지가 있는 따뜻한 단어라 느껴진다.
나누고 베풀면서도 나 자신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면서도 나의 중심을 잃지 않는 것. 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이 되었다.
일상에서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나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에는 '균형'이 잡혀 있는가. 어느 한쪽으로 과하게 치우쳐 나를 괴롭히거나 타인을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인생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정답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든든한 중심축을 세워둔다면, 어떤 파도가 밀려와 삶의 레이아웃을 흔들지라도 금방 나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완벽한 디자인은 없을지언정, 흔들리면서도 균형을 찾아가는 '괜찮은 인생'은 분명 가능할 것이라고 믿어보고 싶다. 나는 오늘도 그 적절한 무게중심을 서툴게 찾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