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장식을 걷어내고 소통의 명도를 높이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분명 나쁜 말은 아닌데, 마음 한구석이 서걱거리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매끄러운 문장들에 섞여 나오는 미세한 가시들―은근한 자기 과시나 교묘하게 감춰진 날 선 감정 같은 것들—이 그 원인이다. 의식적으로 골라내려 하지 않아도 마음이라는 체(거름망) 위에는 자연스럽게 걸러진 '말의 찌꺼기'들이 남는다. 이런 찌꺼기들이 쌓이면 대화는 피곤한 노동이 된다. 슬픈 사실은 이런 불편한 말을 내뱉는 주인공이 타인일 때도 있지만, 나 자신인 경우도 많다는 점이다.
디자인 원리 중 '판독성(Legibility)'이라는 개념이 있다. 글자·기호·그림 등을 얼마나 쉽게 식별하고 이해할 수 있는지를 뜻하는 원리로, 화려한 장식보다 앞서는 디자인의 본질적 기능이다. 흔히 서체를 다룰 때 많이 사용하며, 판독성의 좋고 나쁨은 글자의 형태·굵기·크기·색상·배경 대비 등 시각적 요소에 의해 좌우된다.
글자에 장식이 많아 알아보기 어려운 경우, 굵기가 너무 얇아 안보이거나 너무 굵어 낱글자끼리 뭉치는 경우, 적당한 굵기와 크기더라도 글자색과 배경색의 부조화로 명확한 구분이 어려운 경우 판독성은 떨어진다. 이렇게 훼손된 판독성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신 '시각적 소음'으로 전락하여 보는 이를 피로하게 만든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 역시 이와 같다. 마음의 체에 걸린 '말의 찌꺼기'들은 소통의 판독성이 낮아질 때 발생하는 일종의 소음이다.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어 덧붙인 과도한 수식어는 디자인의 과한 장식처럼 듣는 이의 마음을 피로하게 만들고, 자격지심에 날을 세운 말들은 배경색과 구분이 안 되는 글자처럼 나의 본심을 흐리게 한다. 결국, 대화의 판독성이 낮아질 때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읽어내기 어려워진다.
관계의 판독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쩌면 내가 내뱉는 '말의 알갱이' 크기를 다듬는 일이다. 내 주장의 크기를 조금 덜어내고, 내 감정의 덩어리를 잘게 부수어 상대의 체를 부드럽게 통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동시에 내 마음이 가진 '체의 구멍'을 넓히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상대의 서툰 표현 속에 숨은 진심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내 마음의 그물코를 조금 더 유연하게 벌려두는 일 말이다.
하지만 삶은 디자인 원리처럼 흘러가지는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말의 알갱이는 줄어들지 않고, 마음의 체는 좁아질 대로 좁아져 모든 말이 가시처럼 걸리는 날이 있다.
"말의 크기를 줄이고 체의 구멍을 넓히자"는 다짐이 무색해질 때, 우리는 억지로 대화를 이어가며 찌꺼기를 쌓기보다 서로의 말들이 충분히 정화될 수 있는 시간적·심리적 거리를 두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인생이라는 긴 레이아웃 안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말은 저마다 다른 판독성을 지니고 있다. 어떤 말은 단번에 가슴에 와닿고, 어떤 말은 체에 걸려 끝내 불편한 기억으로 남는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들이 항상 좋은 인상으로 남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내뱉는 말이 누군가의 마음 위에 날카로운 찌꺼기로 남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