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물 08

제 살을 깎아 태어난 것

by 괜찮은


붉게 물든 나의 발은 오랫동안

살얼음판 같은 결정의 순간을 걸어왔다.


이런 나를 두고 예전엔 무게가 있고

진중하다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엄근진', '궁서체'로 불리며

분위기를 흐리는 존재처럼 돼버렸다.

그 이유가 뭘까?


내 삶의 대부분은 어둠과 함께한다.

반달곰이 겨울 한 철을 어둠 속에서 보낸다면 나는 반대다.

아주 짧은 시간, 아니 순간의 빛을 보기 위해

긴 어둠의 시간을 마치 수행자처럼 올곧게 지켜내고 있다.


가장 힘든 것은 빛이 찾아왔음에도

그 빛이 나를 위한 게 아니었음을 깨달을 때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손이 나를 잠시 만지다가

무심히 한쪽으로 치우고 떠나가 버렸다.


몇 번의 희망고문을 겪고

빛을 보고도 기대감이 들지 않을 때쯤

나는 정신을 차릴 여유도 없이 자리를 떠나

오래전 붉은 연을 맺은 이의 응원을 맞이한다.


그 응원은 아주 부드러운 압력으로

나에게 붉은 흔적을 남긴다.

나는 이 흔적을 곧 찾아올 두 번째 압력에 사용할 것이다.

두 번째 압력이 진짜 나의 존재 이유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압력을 느끼며 살아왔고

이것이 내가 감정을 느끼는 방식이다.

그것은 때론 가볍고 경쾌했고 때로는 무겁고 힘에 겨웠다.


나의 친구 중 몇몇은 이런 압력의 무게를 무시하다

끝없는 나락에 빠지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압력의 무게감을 인식하여 모든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작정하고 파놓은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 진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또한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엄근진의 태도라

낙인찍는다 해도 제 살 깎아 태어난 천성 그대로

붉은 발걸음 꾹꾹 눌러 걸어갈 수밖에



아래에 붉은 발로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는 내가 있습니다.





















나는 '도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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