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뺨을 기억하는 것
맴, 맴, 맴
유독 무덥던 8월의 밤
골목 안쪽 집에서 귀를 찢는 매미소리를 뚫고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번엔 사내아인가 보네.'
이튿날 아침, 대문을 보니 고추 없이 금줄이 걸려있다.
'여장부가 태어나셨네.'
내가 그 아이를 처음 본 것은,
엄마 등에 업혀 곤히 잠든 옆얼굴이었다.
통통한 붉은 뺨이 복숭아를 닮았다.
언제나 골목에서 친구들을 모으는 첫 목소리는 도아였다.
여자애들이 고무줄놀이를 할 때, 도아는 남자아이들을 거느리고
딱지치기와 자치기, 오징어 놀이를 하고 다녔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했던 도아는
땅거미가 진 골목을 마지막까지 지키는 아이였다.
시끌벅적, 한데 어울리던 아이들이 사춘기를 맞이할 때쯤
동네 아이들은 하나 둘 골목을 떠나기 시작했다.
어두운 골목을 지키던 쓸쓸함이 대낮까지 이어졌다.
수많은 매미 소리가 가고 오며
이제는 골목의 기억이 추억으로 묻힐 때쯤
도아는 한 남자를 만났다.
다정해 보이는 남자는 어릴 적 사내아이 같은
도아의 모습이 상상이 안 된다고 했다.
맘껏 뛰어놀아도 넓기만 했던 골목을 둘이 걷는데
묘한 착시가 느껴졌다.
둘은 주홍빛 아래서 첫 입맞춤을 나눴다.
도아의 얼굴이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둘은 손을 잡고 어두운 골목길을 걸으며
주홍빛의 안내 속에 몇 번의 계절을 더 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아는 혼자 걷는 날이 많아졌다.
오랜만에 함께 걷던 어느 날, 남자는 이별을 말했다.
그때도 도아의 얼굴은 붉은 복숭아 같았을까.
유독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골목을 홀로 지키던 어린 도아를 불러냈다.
오랜만에 할머니가 찾아왔다.
요 며칠 보이지 않아 걱정했는데,
느리지만 굽은 몸을 지팡이에 기대어
한 발 한 발 나에게로 왔다.
한 팔을 내게 뻗어 지지하고
가쁜 숨을 내쉬는 뒷목엔
고된 땀이 송골 맺혀있다.
여전히 붉은 뺨이 귀엽다.
골목 끝으로 해가 넘어가고 있다.
붉게 물들었던 골목이 서서히 잿빛으로 가라앉는다.
오늘도 그날처럼 매미 소리가 요란하다.
담장 위 고양이는 기지개를 켜고,
인적 없는 골목에 깜빡깜빡 불이 들어온다.
하얗게 시작해서
점점 노랗게,
주홍빛이 되어
골목의 중간께
덩그러니 고개를 숙인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던 소리가
메아리처럼 골목에 맴돈다.
아래에 이 골목의 모든 것을 보아온 내가 있습니다.
나는 '가로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