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보다 퇴근을 기다리는 것
관절이 시큰하고 몸이 무거운 것이
틀림없이 비가 올 모양이다.
신발장 옆에 기대어 선 나는
모처럼의 외출 예감에 들떠 있다.
공동현관을 나와 봉인된 벨트가 풀리면
한쪽 방향으로 정돈된 우아한 검은 주름이
차르르 펼쳐진다.
곧은 줄기는 내 세계를 지탱하는 중심축.
그 중심과 연결된 가지들은 중력을 거슬러
응축된 에너지를 사방으로 방출한다.
주름 한 점 없이 팽팽하게 펼쳐진 존재감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나의 자랑거리다.
나는 그의 손을 악수하듯 맞잡고
잔뜩 흐린 거리로 도도하게 나아간다.
천천히 떨어지던 빗방울이 굵어진다.
후드득—
쏟아지는 빗소리가 귀를 먹는다.
검게 빛나는 이 세계는
완벽히 나의 통제 아래 있다.
속이 훤히 읽히고 주름져 늘어진 몇몇이
부러운 듯 힐끔거린다.
역시 오늘 나오길 잘했다.
비가 거세질수록 그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회색빛 거리에 은빛 사선이 촘촘하게 그어진다.
모두가 사선 앞에 겸손하게 몸을 숙인다.
도도하고 노련한 나는
은빛 사선을 헤치며 그를 이끈다.
전철역에 다다른 나는
자랑스럽게 주름을 정리하고
벨트로 허리를 고정한다.
계단을 오르는 그의 바지가 종아리에 감겨
예쁜 각선미를 자랑하고
신발에선 찌걱찌걱 소리가 흥을 돋운다.
모든 게 완벽하다.
사무실 한구석,
책상에 기대 시계와 창밖을 번갈아 살핀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누구보다 간절히 퇴근을 기다리는 존재가
바로 나라는 것을.
다들 떠난 자리,
그는 여전히 일어날 기색이 없다.
그의 미간이 내 주름처럼 접혀있다.
다행히 창밖의 비님은 멈출 줄 모른다.
집에 갈 때도 나의 완벽한 자태를 뽐낼 수 있겠다.
다시 나선 길,
출근 때의 소란함은 사라지고
한적한 어둠이 깔려 있다.
검은 물웅덩이에 빗줄기가 내리 꽂힐 때마다
색색의 조명이 튀겨지듯 발광(發光)한다.
보는 눈길 없어도 유리에 비친 내 실루엣은
꽤 근사하다.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에 그가 몸을 숙인다.
나도 능숙하게 그를 따른다.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우리는 완벽한 원팀이다.
공동현관 앞에서
그가 나를 빙그르르 돌린 후 가지런히 접는다.
집 앞 복도에 도착한 그가
나를 공작새처럼 활짝 펼쳐 전시하듯 내려놓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의 어깨와 등이
짙은 색으로 물들어 있다.
완벽한 하루다.
아래에 당신의 어깨가 젖은 줄 모르는 내가 있습니다.
나는 '우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