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물 16

차갑게 다 보고 있는 것

by 괜찮은


저 아래 지하층에 오래된 마음이 살고 있다

먼 곳에서 도착한 날의 온기가 식어간다

처음에는 그 봉지가 사는 공간을 자주 찾았다

그러나 점차 찾는 손은 줄고 검은 액체는 희석되었다

진공 상태의 액체는 자동 연장된 거처에 퇴적된다


불이 켜진다

익숙한 얼굴이 빤히 쳐다본다

구석구석 손으로 만지다 이내 불이 꺼진다

잠시 후 다시 불이 켜지고 비닐 속 사과를 꺼낸다

이제 하나 남았다


불이 켜진다

벌써 세 번째

내민 얼굴 턱 밑이 거뭇하다

잠시 지하층을 바라보다

낮게 걸린 운무가 지하층을 덮는다

플라스틱통 하나 꺼내 들고 불이 꺼진다


불이 켜진다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몸을 숙여 지하층을 연다

퇴적층에 균열이 생긴다

하나씩 그러다 두 개, 세 개,

양손으로 여러 개를 한꺼번에 꺼내든다


눈동자에 운무가 서린다

텅 빈 지하층


위잉—


모터음이 침묵을 깬다

꺼내 든 가위를 내려놓는다

바닥에 놓인 진공의 봉지를

하나씩 그러다 두 개, 세 개,

양손으로 여러 개를 한꺼번에 집어넣는다

지하층이 다시 차가운 온기로 채워진다




아래에 당신이 꺼내지 못한 것을 가장 오래 기억하는 내가 있습니다




















나는 '냉장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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