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간을 지층으로 받아내는 것
이곳의 하루는 언제나 알람으로 시작되었다.
알람이 멈추며 시작되는 인기척은
잠자고 있던 공기를 밀어내
푸르스름한 공간의 구석까지 밀어 넣는다.
무중력의 공간이 기지개를 켠다.
나는 싱크대 선반에 가만히 머문다.
곧 그가 나를 찾을 것을 알고 있다.
알람이 멈추고 잠자리의 흔적을 지우는
짧은 시간이 흐르면 그는 나에게로 다가와
옆구리에 검지와 중지를 걸어 반바퀴 돌린 후
찬물로 공복을 채워준다.
밤새 마른 입술을 하얀 원주(圓周)에 대고
천천히 나를 기울여 다시 공복으로 만든다.
그는 자신의 입술이 닿은 원주를
손으로 가만히 닦아내곤 했다.
그렇게 그는 침묵 속에서 짧은 시간을 보낸 뒤
현관문을 열고 나가 해가 지면 그 문으로 돌아왔다.
나는 식탁에서 그가 돌아올 때까지
창틀 그림자의 궤적을 관찰하고,
창에 맺힌 빗방울의 패턴과 불규칙한 흐름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성난 태양의 열기와 매미의 절규에 달궈졌고,
오색으로 물든 언덕과 하얗게 쌓인
시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알람이 울리지 않는다.
기척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검지와 중지로
나를 잡아들어 물을 채우고
다시 마른 입술을 통해 공복을 채우기 시작했다.
때때로 내 안을
뜨겁고 검은 물로 채웠고,
채웠고,
채웠다.
내 안에 그의 시간이
지층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고
해가 질 때까지 침묵이 계속되었다.
아래에 그의 시간을 느끼는 내가 있습니다.
나는 '컵(머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