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 모르는 얼굴을 보는 것
없다가 있다.
불이 켜지고 문이 열린다.
느린 걸음으로 그가 들어온다.
일을 본 후 세면대에 손을 씻는다.
미간에 손가락을 대고 버튼처럼 꾹꾹 누른다.
양손을 펼쳐 마른세수를 하더니 안경을 고쳐 쓴다.
비둘기가 구애하듯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한참을 참았다가 켁켁 마른기침을 한다.
세면대에 팔을 뻗어 체중을 싣고 상체를 기울인다.
고개를 좌우로 번갈아 돌리며 나를 살핀다.
그와 나는 언제나 반대로 본다.
그가 짧은 머리를 쓸어 올린다.
이마에서 정수리를 거쳐 뒤통수까지 한 번에.
바리캉을 꺼내든다.
딸깍.
바리캉 헤드에 3밀리 덧날을 끼운다.
위잉―
전원을 밀어 올린다.
구레나룻 끝에 바리캉을 댄다.
망설임 없이 위로 쳐 올린다.
왼손으로 귓바퀴를 접고 바리캉을 대려다
거치적대는 안경을 벗어 놓는다.
위이잉― 츠크르르르―
오른쪽 귀에서 옆머리, 뒷머리
반대편 머리까지 정리를 끝낸 후
덧날을 빼내 머리선을 정리한다.
머리, 손, 바리캉의 삼위일체.
하얀 세면대에 쥐가 쏠은 듯한
검은 머리칼이 한숨 되어 쉬고 있다.
그가 정확한 동작으로 헤드를 분리하고
청소솔로 내부를 털어낸다.
조립하고 전선을 정리하고
원래 있던 자리에 수납한다.
세면대 위 검은 번뇌를 화장지로
쓸어 모아 휴지통에 버린다.
샤워기를 틀어 세면대를 씻긴 후
정수리에 물줄기를 쏟아붓는다.
남아있던 번뇌가 얼굴과 목과 어깨를 타고 흘러내린다.
점점 그의 모습이 흐려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점점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하얀색 타일, 수건, 칫솔, 면도기, 비누, 문, 손잡이.
있다가 없다.
아래에 당신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당신이 다른 내가 있습니다.
나는 '거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