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물 19

대지(大地)를 꿈꾸는 것

by 괜찮은


꿈을 꾸었다.


드넓은 대지(大地)에 무성한 나무와 들꽃이 몸을 흔들고

크고 작은 짐승들이 땅과 하늘을 오가며

나비와 벌이 꽃 사이를 떠돌고

강물은 푸른 잎맥처럼 대지를 가르고 있었다.


단비가 내린다.


차가운 물방울이 꿈 위로 떨어진다.

잠시 고였던 물은 천천히 흙으로 스며들어

묵직한 숨처럼 아래로 가라앉는다.

너는 수줍게 고개를 들고 나는 모공을 닫은 채 숨을 참는다.


너는 자란다.


너는 어느새 밝은 연둣빛을 띠고 있다.

그는 아침마다 햇빛 드는 곳에 너를 두고 바라본다.

이름을 불러주고 한참을 곁에 머문다.

그럴수록 너는 초록빛으로 번졌고 보이지 않는 발은 점점 억세졌다.


나는 그대로다.


너의 근원(根源)은 오랜 시간 짙은 어둠 속에 담겨 있었다.

하얗던 몸이 누렇게 바랠 때까지 너의 성장을 지켜왔지만

어둠 속 너는 완강하게 나를 밀어내며 균열을 일으킨다.

나는 더 이상 너를 담던 그릇으로 남을 수 없다.


꿈을 꾸었다.


나는 처음부터 대지(大地)를 꿈꾸어 왔다.

무성한 나무와 짐승들, 곤충과 강물이 함께 숨을 쉬는

비록 내 삶이 너를 위해 자리 내어준 대지(代地)에 가까웠을지라도

금 가고 깨진 나는 어느 공터 흙 속에 묻혀 끝나지 않은 꿈을 꾼다.




아래에 끝내 대지(大地)가 되고 싶었던 내가 있습니다.




















나는 '화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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