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계의 원리

키오스크 앞에서 오지랖을 외치다.

by 괜찮은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큰 피해가 없는 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것이 상대가 원하지 않는 참견이 될까 봐, 더 능숙한 누군가가 있는데 괜히 일을 복잡하게 만들까 봐, 귀를 열어둔 채 제 자리를 지키며 타인의 곤란 앞에서 조용히 망설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병원 진료를 마친 어머니를 배웅하기 위해 터미널을 찾았다. 좀처럼 취향을 드러내지 않는 분이 갑자기 햄버거가 드시고 싶다고 하셨다. 차 시간은 넉넉했지만, 출발 시간이 적힌 티켓은 사람을 괜히 조급하게 만든다. 거창한 수제 버거라도 사드리고 싶었지만, 쫓기는 마음에 터미널 매장에서 한 끼를 해결하기로 했다.


키오스크를 향해 갈 때, 기계 옆에 한 아주머니가 어중간하게 서 계셨다. 내가 다가가자 천천히 몸을 돌려 나를 향하시는 모습이 왠지 도움을 청하는 신호 같았다.


“도와드릴까요?”


아주머니는 눈도 맞추지 못하시고 수줍게 좋다고 하셨다. 작은 키에 브라운 계열의 은방울꽃 모양 뜨개모자를 눌러쓴 모습이 참 고우셨다.


“뭐 드시고 싶으세요?”

“햄버거요.”


작지만 또렷하게 말씀하셨지만 키오스크 화면을 가득 메운 버튼과 광고 사이에서 무엇을 눌러야 할지 몰라 당황하신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나라고 다를 건 없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키오스크가 있고, 저마다 다른 인터페이스와 생소한 표현으로 사용자를 시험한다.


도와드리기로 자청했으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화면을 살핀다. 형형색색의 이벤트 팝업에 빼앗긴 시선을 가까스로 거둬들여 메뉴 버튼을 찾았다.


다행히 햄버거 하위 메뉴가 나타났고, 아주머니께 드시고 싶은 메뉴를 고르시게 한 후 선택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바뀌며 나타난 추가 선택 메뉴의 토핑들은 마치 반드시 선택해야만 할 것처럼 존재감을 과시했다.


모든 것이 한글이었지만, 화면 속의 말들은 인식은 되되 이해되지 않는 낯선 언어처럼 느껴졌다.


여러 단계를 거쳐 정성스럽게 ‘순정 햄버거’를 주문했다. 영수증과 번호표를 건네드리자 아주머니께서 감사 인사를 하며 덧붙이신다.


“직접 배워서 자주 해봐야 느는데…”


그 말이 이상하게 맘에 걸렸다. 마치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이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회적 경험의 기회는 줄고 인지능력도 조금씩 떨어진다.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기 쉽지 않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자연법칙 아래서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해서 도태되는 것이라 여기게 만드는 요즘 분위기가 안타깝다.

비단 키오스크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루가 다른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는 편리함 만큼 적응의 피로감을 주기 때문이다. 감정 없는 기계 앞에서 작아지는 우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기술의 발전 속도와는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디자인에서 '위계(Hierarchy)'는 시각적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다. 하나의 화면 안에서 무엇을 먼저 보고, 무엇을 나중에 읽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안내하는 질서다. 중요도에 따라 크기와 색, 위치를 달리해 사용자의 시선을 안내한다. 만약 화면 앞에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면, 그것은 사용자의 능력 문제 이전에 위계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주문한 버거를 먹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저쪽 테이블에서 아주머니가 버거를 들고 맛있게 드시고 계셨다. 내가 아니었어도 누군가 도와드렸겠지만, 어쩌면 많은 이가 이런 번거로움 앞에서 먹고 싶은 욕구를 포기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들 아니었으면 그냥 안 먹었을 거야"


어머니가 말씀하시며 햄버거를 크게 '앙' 무신다.




디자인의 목적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기술은 마땅히 그 목적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써 존재해야 한다. 기술이 목적보다 우위에 서고 사람이 그 아래에 배치되는 순간, 디자인의 본질적 위계는 뒤집히고 만다.


'무엇을 먼저 보이게 할 것인가'

'무엇을 가장 위에 둘 것인가'


어쩌면 우리 삶의 위계에서 가장 먼저 놓여야 할 것은 효율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기술이 만든 높은 문턱 앞에서 누군가의 소박한 욕구가 밀려나지 않도록 우리가 세워야 할 우선순위는 결국 '다정한 오지랖'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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